6월 중순부터 2주 정도만 맛볼 수 있다는 신비 복숭아. 겉은 천도복숭아처럼 빨갛고 매끈하며 속은 백도처럼 부드럽다.

최근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옥수수다.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이 옥수수를 먹어봤다는 '인증'이 소셜미디어상에서 끊이지 않는다. 이 옥수수의 특별함은 앞에 붙은 두 글자에 있다. '초당(超糖)'. 월등한 당도, 일반 옥수수 대비 당도가 2~3배 높다는 '초당 옥수수' 이야기다. '식탁이 있는 삶' 김재훈(36) 대표가 2011년 일본 식품 박람회에서 초당 옥수수를 맛보고 종자를 수입해, 국내 환경에 맞게 재배법을 개발한 뒤, 2014년 이를 상품화했다. 국내 판매 물량의 70%가량을 '식삶'에서 유통한다.

요즘 누가 '인싸템(트렌드에 익숙한 소위 인사이더의 아이템)'을 묻는다면, 고개 들어 농장을 봐야 한다. 지난해 늦여름을 강타한 '포도계의 에르메스' 샤인머스캣은 이마트에서 처음으로 포도를 과일 매출 1위(1~10월 집계)에 올려놓았다. 올해 식삶에서 두 달 만에 팔린 초당 옥수수만 100만개. 과일과 채소도 유행 따라 먹는, '인싸 농작물' 시대다.

과일의 공식 바꾼 '인싸 과일'

'1년 중 딱 2주 동안만 맛볼 수 있습니다.'

인싸 과일 중 하나인 '신비 복숭아'에 뒤따르는 설명이다. 신비 복숭아는 겉은 천도복숭아처럼 빨갛고 딱딱하면서, 속은 백도처럼 말랑말랑한 복숭아다. 이 때문에 '신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0년대 초반 경북 경산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던 이윤도 명장이 천도와 백도 품종을 교배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명장은 "백도의 달콤한 맛을 내면서도 털이 없는 복숭아를 만들고 싶었다"며 "몇 년 전부터 맘카페 등에서 인기를 끌면서 재배 농가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신비복숭아는 재배가 까다롭고, 저장도 어려워 판매 기간이 짧다. '제주 초당 옥수수'도, 비슷한 이유로 6월에만 맛볼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는 '한정판 과일'이란 점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3)씨는 "6월 초에는 초당 옥수수를 먹고, 6월 말에는 신비 복숭아를 먹는 게 우리 집의 새로운 공식"이라며 "하우스 재배나 수입 과일로 인해 제철 과일의 의미가 많이 사라졌는데, 지금이 아니면 못 먹는다는 점에서 구매 욕구가 생긴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6월 이마트에서는 판매 5일 만에 준비한 신비 복숭아 물량의 90%가 소진되는 등, 신비 복숭아 30t이 조기 완판됐다. 올해도 지난 25일부터 신비 복숭아 100t을 판매 중인데, 이틀 만에 22t이 판매되는 등 조기 완판이 예상된다.

특히 '인싸 과일'은 기존 품종에 비해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몇 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머스캣의 경우 맛이 망고처럼 달콤해 '망고 포도'라고 불린다. 일반 청포도의 당도가 17브릭스(당을 재는 단위)라면, 샤인머스캣은 20브릭스다. 지난봄에 유행한 '단마토'의 경우, 단맛을 가진 식물인 스테비아에서 추출한 '스테비오사이드' 성분을 재배 과정에서 토마토에 스며들게 했다. 열량은 낮지만, 설탕에 절여 놓은 것처럼 단맛이 강하다.

과일 아닌 경험을 구매하는 것

인싸 과일과 채소 가격은 대개 기존 품종에 비해 비싼 편이다. 신비 복숭아는 기존 천도복숭아보다 1.5~2배, 초당 옥수수는 기존 옥수수에 비해 3배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맞벌이 부부인 이모(35)씨는 "평소에 맛집 등을 다니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맛있고, 새롭고, 유명한 것을 한번 먹어본다는 점에서 돈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價心比)' 유행 덕을 톡톡하게 보는 셈이다.

실제 인싸 과일 구매자 중에는 이씨처럼 '경험'을 산다는 사람이 많다. 소셜미디어는 유행을 부추기는 주요 축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초당 옥수수 관련 글이 5만5000여 개, 신비 복숭아 관련 글이 2만여 개 있다.

직장인 김씨는"올해 유행하는 과일 중 단마토를 못 먹어봐서 너무 아쉽다"며 "샤인머스캣의 경우 맛있지만, 워낙 고가라 남편이 '한번 먹어봤으니 올해부터는 먹지 말자'고 하더라"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소비자들은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으면서도 맛이 좋고, 색다른 이야기가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며 "차별화된 농산물 판매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