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등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이 올 들어 한국전력의 해외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중단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환경 보전에 역행하는 사업이 기업 가치를 떨어뜨려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한전의 지분 8.2%(최근 공시 기준)를 가진 3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어 공기업인 한전 '봐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지난달 30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인도네시아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안건을 단독 상정해 통과시켰다. 증권업계에선 외국인 지분 매각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이 탄소 배출을 감축하려는 한전의 노력이 없으면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4월 한전에 "해외 석탄 발전소 투자에 대한 명확한 전략적 근거를 김종갑 사장이 직접 설명하라"고 요구하며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랙록은 전 세계 800여개 기업 중 16개를 '요주의 기업'으로 지목했는데, 한전이 포함됐다. 영국 성공회도 연말까지 개선이 없으면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네덜란드연기금(APG)은 이미 지난 2월에 6000만유로 규모의 한전 지분 매각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반면 국민연금은 한전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이는 작년 말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ESG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한 것과 배치된다. ESG 투자란 투자 의사 결정 과정에서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이 원칙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총 상위에 포진한 기업 56개에 대한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일반투자'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과 여름철 누진제 완화 정책 등으로 큰 투자 손실을 안긴 한전은 여전히 단순투자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