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PC 통신 시절에 등장해 2000년대까지 인기를 누린 PC 게임 '바람의 나라'가 이달 15일 다시 등장한다. 모바일 게임으로 리메이크된 '바람의 나라: 연'이 출시되는 것이다. 게임 개발 업체 넥슨은 옛날의 그래픽 감성을 살리려고 도트 그래픽(점으로 표현된 그래픽)을 재현하고 배경음도 당시의 국악 느낌을 되살렸다. 20여년 만에 재등장한 바람의 나라는 이젠 40대 중년이 된 게임 이용자에게 '그리웠던 그 순간, 다시 느껴보기 바람'이란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은 대성공이다. 100만명 이상이 이 게임에 사전 등록했다.
2000년대 초 인기를 끌던 추억의 PC 온라인 게임이 모바일 게임으로 재탄생하는 레트로(복고) 바람이 게임 업계에 거세다. 라그나로크, 포트리스 등 2000년대를 주름잡은 국민 게임들이 당시 감성을 그대로 머금은 채 모바일 게임으로 연이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당시 중고생·20대였던 소비자는 이젠 30·40대 직장인이 돼, 두툼한 지갑과 함께 레트로 게임에 컴백한다. 여기에 화려한 그래픽 위주의 최신 게임에 질린 10·20대 젊은 층들까지 복고풍 게임 방식에서 참신한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
◇돌아오는 추억의 게임들
넥슨은 지난달 18일 모바일 게임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를 내놨다. 당장 애플의 앱스토어 게임 부문에서 매출 2위를 차지했다. 카트라이더는 귀여운 캐릭터를 내세운 PC 레이싱 게임으로 2000년대 한때 세계 이용자(누적) 2억명을 찍은 레전드(전설)급 작품이다. 2012년에 모바일 게임으로 내놨다가 참패했는데, 넥슨이 다시 한번 대대적인 게임 개편을 하고 내놓자 대박이 났다. 넥슨은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마비노기와 테일즈위버도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견 게임 업체 그라비티가 지난 7일 선보인 모바일 게임 '라그나로크 오리진'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온라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 게임)인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모바일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그라비티는 지난 2018년에도 같은 원작을 모바일로 재해석해 '라그나로크M'을 출시했었다.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출시도 되기 전 예약자 150만명이 몰리면서 성공 궤도를 달리고 있다. 웹젠이 지난 5월 말에 내놓은 MMORPG '뮤 아크엔젤'도 2001년 나왔던 원작 게임의 재미를 되살렸고, '뮤저씨'(뮤를 플레이하는 아저씨)들을 다시 한번 게임으로 끌어들였다.
올 하반기 기대작인 모바일 게임 '포트리스 배틀로얄'도 레트로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 PC방에서 연인이 나란히 앉아, 서로 포탄을 쏘아대는 광경을 만들었던 PC 대전 슈팅 게임이 '포트리스'다. 팡스카이는 다음 달 1일 친숙한 원작 게임과 배경음 대부분을 재현해 '포트리스 배틀로얄' 신작을 출시한다. 사전 등록을 시작한 지 10일도 안 됐지만, 벌써 100만명이 이름을 올렸다.
복고풍의 정점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이다. 모바일 게임 매출 1위 자리를 놓지 않는 리니지M도 본래 2000년대 PC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를 모바일로 구현한 게임이다. 엔씨소프트는 자회사인 엔트리브소프트를 통해 2000년대 인기 MMORPG인 트릭스터를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어 연내 출시할 예정이다.
◇3040은 향수, 1020은 호기심
레트로 현상은 국내 문화 콘텐츠 전반의 현상이다. 1980~1990년대 모습을 보여준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나 99학번의 추억을 담아낸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전형적인 레트로 콘텐츠다. 유행이 지난 가요 장르로 생각됐던 트로트를 다시 유행시킨 '미스 트롯'이나 '미스터 트롯'도 레트로 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TV 예능에서도 2000년대 인기 스타인 이효리나 비가 출연해 과거 감성을 자극한다.
레트로 현상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1020 세대에도 침투했다. 과거 유행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까지 뛰어들자, 레트로를 '뉴트로'(new+retro), '영트로'(young+retro)라고 부르기도 한다. 10대 중고생들이 아빠·엄마와 같이 트로트를 좋아하거나, 같은 게임을 즐기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한 방송국의 PD는 "경제력을 가진 40대, 50대 소비자들이 과거 본인들이 좋아했던 콘텐츠나 연예인에 다시 한번 관심을 쏟고 있다"며 "과거에 10·20대에만 매달리던 콘텐츠 제작 풍토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