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철갑상어와 미국 주걱철갑상어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물고기.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서 나온 '라이거'가 물고기에서 재현된 셈이다.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 라이거가 태어난 데 이어 과학자들이 미국과 러시아에서 2억년 가까이 따로 살던 두 상어를 결합시켜 물고기판 라이거를 탄생시켰다.

프랑스 작가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시에서 “나는 굶주린 암상어와 잔인한 숫호랑이의 아들이 되고 싶다”라고 노래했다. 허영만의 만화에 등장해 잘 알려진 이 기괴한 시가 인위적인 교배로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15일(현지 시각) “헝가리 수산양식연구소 과학자들이 최근 국제 학술지 ‘유전자’에 러시아 철갑상어의 난자와 미국 주걱철갑상어의 정자로 탄생시킨 새로운 잡종 물고기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두 상어는 같은 연골어류이지만 이미 1억84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따로 진화했다. 그 사이 식성도 생김새도 전혀 딴판이 됐다.

러시아 철갑상어는 강이나 호수, 연안에서 살면서 갑각류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육식성 어류이다. 그 알로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캐비어를 만든다.

미국 주걱철갑상어는 고래처럼 물에서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다. 이름대로 주둥이가 주걱 모양인데, 여기에 수만 개의 감각세포가 있어 플랑크톤을 감지한다.

두 물고기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은 부모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모두 엄마의 입과 육식 식성을 가졌다. 지느러미와 주둥이는 아빠를 닮았다. DNA 분석 결과 잡종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러시아 철갑상어의 DNA 두 벌에 미국 주걱철갑상어 한 벌을 가진 집단은 러시아 철갑상어에 더 가까웠다. DNA를 균등하게 받은 집단은 부모의 생김새를 고루 섞은 모습이었다.

러시아 철갑상어(맨 위)와 미국 주걱철갑상어(맨 아래)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B, C)들.

◇개체 수 늘리려다 잡종 탄생시켜

연구진은 우연히 두 상어 사이의 잡종을 만들었다. 두 상어는 지구 상 담수 어류 중 가장 크기 수명이 길며 천천히 자라는 종들이다. 두 물고기는 서식지 파괴와 남획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주걱철갑상어는 중국에 사는 종은 이미 멸종했고, 미국 종은 단 22마리만 남아 있다. 러시아 철갑상어 역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다.

헝가리 연구진은 지난해 러시아 철갑상어의 수를 늘리기 위해 난자단독발생을 시도했다. 난자가 정자 자극만으로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방식이다. 정자와 결합하지는 않아 일종의 처녀생식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 철갑상어 난자는 미국 주걱철갑상어 정자로 자극했다. 연구진은 종이 달라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자와 난자가 수백 개의 수정란을 만들었다. 한 달 뒤 3분의 2가 알에서 깨어났으며 지금도 100여 마리가 살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두 물고기는 일종의 ‘화석 어류’이다. 1억8400만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이후 거의 변화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두 종이 생각만큼 다른 물고기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잡종 물고기를 계속 키우겠지만 다시 잡종을 만들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잡종이 실수로 자연에 방출되면 멸종위기에 있는 철갑상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잡종 물고기가 라이거나,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같이 인위적으로 만든 다른 잡종처럼 생식 능력이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