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호텔 조식을 몰래 먹고 있다."

지난 6월 초 인천 중구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있는 H호텔 관계자들 사이 이런 소문이 퍼졌다. 호텔 투숙객이 식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음식량보다 많은 양의 음식이 호텔 조식당에서 매일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식당은 무인(無人)으로 운영된다. 의문의 음식 실종은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달 23일 호텔 측은 '투숙객이 아닌 사람들'이 단체로 건물 4층의 호텔 조식당과 같은 층 피트니스 센터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의 정체는 '소방관'들. 심지어 이들은 해당 호텔과 같은 건물에서 영업하는 무허가 N숙박업소에서 묵고 있었다. 호텔 측은 "소방관들에게 인가된 숙소 이용을 권장했지만 예산상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허가받지 않은 업소를 계속 이용하는 등 품위 손상을 하게 된 경위를 파악해 달라"는 내용의 항의서를 이달 1일 전북소방 측에 보냈다. 소방 관계자는 "예산 부족이 낳은 부끄러운 참사"라고 했다.

사연은 이랬다.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던 3월 31일 정부는 전북소방본부 소속 소방관 12명을 인천공항에 파견했다. 임무는 코로나 의심 환자로 분류된 인천공항 해외 입국자들을 격리 시설로 이동시키는 것. 전북에서 올라온 이들에게 정부가 제공한 하루 숙박비는 '2인당 6만원' 수준. 1인당 3만원인 셈이다. 전북소방본부 예산 담당자는 "예산이 부족했다"고 했다. 코로나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당장 중앙정부 예산이 정식으로 편성되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있는 예비비를 끌어다 써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는 의미다.

인천시 경제자유구역청과 호텔 측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묵던 숙소는 영업 등록을 하지 않은 무허가 숙박업소다. 전북소방 관계자는 "국가공무원이 인천 같은 광역시에 출장 갈 경우 국가에서 지원하는 숙박비 상한선이 1인당 6만원인데, 이번 출장의 경우 예산 부족으로 2인당 이 금액으로 책정했다"고 했다. 현재 상황에 이의를 제기한 H호텔은 숙박비가 1박에 11만~21만원 선이다.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파견 당일 긴급 파견 소식을 통보받은 소방관들은 급하게 인천으로 향했고, 이튿날 새벽 2시가 돼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숙소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결국 전북소방 측이 인천소방본부에 직접 인근 숙소를 문의해 숙소 3곳 목록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무허가 숙박 시설인 N숙박업소가 포함됐다. 파견 소방관들은 "추천 숙박 시설에 무허가가 포함됐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소방 측은 "소방관들이 한 빌딩에 두 숙소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실제 H호텔은 이 건물 3~4층에, N숙박업소는 건물 5~12층에서 영업하고 있다.

H호텔 항의에 따라, 전북에서 올라온 소방관들은 개인 사비를 모아 호텔 측에 식자재비 13만원을 배상했다.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파견된 소방관들에게 숙박비 외에 단 3만원이 하루 '출장비'로 설정됐다. 활동비와 세끼 식사 비용이다. 소방 관계자는 "항의서가 소방본부에 들어온 즉시 다른 숙소를 잡았다"며 "호텔 측에 너무나 죄송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