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마다 성대한 생일파티를 연다. 파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해 생일 무렵 찾을 수 있는 1년 만기 적금을 들고, 생일날 남김없이 쓴 뒤 내년을 위해 또 적금을 든다. 성대한 생일파티란 그때 가장 재미나게 하고 있는 일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바이올린 배우기에 푹 빠져 있었던 30대 초반엔 동네 음악학원 선생님들을 다 모아 앙상블을 조직한 뒤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음악회를 열었다. 음악 선생님들은 내 기량이 최대한 돋보이도록 연주를 해줬다. 이 때문에 친구들은 내 실력이 대단한 줄 알지만, 그 후로 나는 누가 보는 앞에선 절대 악기를 꺼내지 않는다.

쉰 살엔 헬스와 스피닝에 빠져 체육관에서 파티를 열었다. 다니던 체육관을 두 시간 빌리기로 하고, 숨쉬기 말곤 운동하지 않는 친구들을 선발해 초대장을 보냈다. 트레이너에겐 내 친구들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센스 있었던 트레이너는 내가 잘하는 운동을 사이사이에 넣어 능력을 과시하게 해주면서, 그것이 지인들의 질투심을 자극해 열심히 운동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 나는 인복도 많지.

이지유 과학 칼럼니스트

친구들은 눈을 반짝이며 체육관에 들어서서는,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운동했다. 하지만 이내 조용해지더니 '헉' '악' '아이고' '나 죽네' 등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비명을 질렀고, 운동이 끝난 뒤엔 근육이 풀려 계단을 내려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찾아간 보쌈집에선 "이 동네에 이렇게 맛있는 보쌈집이 있었어?"라며 쉬지 않고 밥을 먹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애써 모은 돈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을 사지 않고 왜 그런 파티를 여냐고. 두어 시간 즐기자고 모은 돈을 다 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 죽을 때 그 물건들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만 재미나고 특별했던 파티의 행복한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사는 내내 기쁨을 주다가 죽을 때 나와 함께 사라진다. 이보다 확실한 '내 것'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