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생인 전성희(77) 대성산업 이사는 김영대(78) 대성산업 회장의 비서로만 40여년 자리를 지켰다. 지금도 현역이다. 대기업 오너 일가도, 계열사 사장도 아니지만 이제 손자뻘인 직원들과 함께 일한다.

대성산업 전성희 이사가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부근의 디큐브시티 오피스동 11층에서 일하는 모습. 그가 보좌하는 대성산업 김영대 회장 집무실은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전 이사는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뒤 경제적인 이유로 비서 일을 시작했다. 남편(심재룡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2004년 작고)을 따라 결혼 직후 미국으로 떠나 10년 만에 귀국했지만, 시간강사인 남편 월급으로 네 식구(슬하 1남1녀)가 생활하기는 빠듯했다. 김 회장 친구이던 남편의 소개로 1979년에 이 회사에 발을 들였다.

전 이사는 40여년을 똑같은 패턴으로 살았다. 아침 6시에 출근해 회장실 책상과 결재 서류 등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또 김 회장에게 들어오는 이메일을 하루 100통 넘게 읽는다. '보고해야 하는 것' '오늘 내로 답을 해야 하는 것' '보고할 필요가 없는 것' 등 세 가지로 그것을 분류한다. 회신이 필요한 이메일에 대한 초안을 잡고 보고한다. 아무리 복잡한 내용도 김 회장과 세 번 정도 논의를 하면 'OK' 사인이 떨어진다.

그는 의전을 하는 비서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정직과 실력을 꼽았다. 롱런하는 비결을 묻자 "단순히 의전만 챙기지 않고, 업무로 회장님을 보좌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회사 업무 전반을 꿰뚫고 있어서, 직접 해외로 나가 계약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는 "모시는 분에 대해 존경심이 없다면 제대로 보필할 수 없다"며 "높은 사람이나 비서나 서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폐쇄적이고 'No'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찾은 서울 구로구 대성산업 회장실은 외부에서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직원들도 간단히 노크만 하고 이곳을 드나든다.

그는 또 “이 회사에서 회장님께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물론 그때는 반드시 근거와 이유를 댄다”고 설명했다. 김영대 회장도 웃으며 호응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분이 가끔 나를 말려주니 고마운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