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쯤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네덜란드 영화 프로듀서는 자기들은 여름 한 달 휴가를 위해 산다고 했다. 그럼 나머지 11개월은 어떻게 사냐고 물었더니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한다면서 웃었다.
가을이 되기 무섭게 오후 네다섯 시면 어두워지고 춥고 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그들에게 뜨거운 여름 태양은 절대적인 구원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은 더위를 찾아 길을 나서고 우리는 더위를 피해 길을 나선다. 여름휴가는 근대와 자본주의가 낳은 시즌 문화다. 우리는 폭염에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복달임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선비들은 계곡에서 시원하게 발을 담그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를 탁족(濯足)이라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즈음하여 여름휴가 패러다임도 뒤바뀔 조짐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독서를 떠나지 않는 여행이라고 멋지게 말했지만 평범한 우리는 이런 황금의 시간에는 책을 읽어도 어딘가 떠나서 책을 읽고 싶다.
많은 것을 원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올해 여름휴가지를 고향으로 잡아보는 건 어떨까? 인구의 반 정도가 몰려 있는 수도권의 경우, 3대 이상 산 서울 토박이는 5%가 되지 않으며 경기도도 고작 25%라는 통계가 있다. 어차피 여행이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라면 고향이야말로 뿌리이며, 이 공간을 향한 향수는 동서고금이 마음을 같이한다.
육군 항공단의 조종사 아버지와 공군 장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존 덴버의 출세작인 이 노래는 그가 나고 성장한 뉴멕시코주나 콜로라도주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고향 노래다. 그는 독일계 성(姓)인 도이첸도르프를 버리고 그가 가장 사랑한 도시 덴버를 아예 성으로 삼았다. 이 노래는 그의 낭랑한 목청처럼 마냥 밝은 노래가 아니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웨스트버지니아 석탄 광부 아내의 힘든 삶이 추억처럼 녹아 있다. 그래도 고향은 ‘거의 천국(almost heave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