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 세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26회 호암상 시상식을 마치고 수상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호암재단이 내년부터 기존 호암과학상을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으로 분리해 확대 개편하기로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호암상은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려 학술·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뽑아 시상한다. 199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만들었다.

호암상은 본래 과학상, 공학상, 의학상, 예술상, 사회봉사상으로 나눠 시상한다. 수상자들에게는 상장과 메달, 상금 3억원이 수여된다. 앞으로는 과학상을 2개 부문으로 나눠 물리·수학부문과 화학·생명과학부문을 별도로 시상하게 된다.

호암상.

◇이재용 “기초과학 역량 높이자”

호암재단이 호암과학상을 분리 확대 개편한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제안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호암상 설립자 가족으로서 호암상이 제정 취지에 따라 잘 운영되고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공학이나 의학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국내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산업 생태계의 기초를 탄탄히 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과학상을 확대 시상하는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삼성 자체만의 경쟁력 뿐만 아니라, 기초과학과 협력사 지원, 중소기업 업그레이드 등 경영환경이 정비돼야 경쟁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삼성이 패스트팔로워가 아닌 퍼스트무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려면 근원전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작년 4월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비전을 밝히며, “생태계 조성 및 상생에 대해서도 늘 잊지 않겠다”며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 말로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을 멈추게 하지 않는 힘이라는 게 개인적인 믿음”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그동안 기초과학 분야 지원에 힘을 쏟아 왔다. 삼성은 미래기술육성사업을 통해 물리와 수학 등 기초과학 분야의 혁신적인 연구를 직접 지원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총 601개의 과제에 7713억원을 지원했다.

◇호암상 수상자 중 노벨상 수상자 나올 가능성 높아

호암재단은 이 부회장의 제안을 받고 역대 호암상 수상자, 호암상 심사위원, 호암상 위원, 노벨상 수상자 등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과학상 확대 개편을 최종 확정했다.

이는 국제 과학계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스웨덴 노벨상은 과학상을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 등 2개 부문(노벨생리의학상은 의학상으로 분류)으로 나눠 시상한다. 홍콩의 쇼(Shaw)상도 천문학과 수학 등 2개 부문에 대해 시상한다.

학계에서는 만약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호암상 수상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세계적 학술정보서비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 로이터)는 호암상 수상자인 찰스 리 미국 잭슨랩 교수, 유룡 KAIST 특훈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등을 ‘노벨상을 수상할 유력 후보’로 예측하기도 했다.

호암상은 올해 30회 시상까지 총 152명의 수상자들에게 271억원의 상금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