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산업2부장

미아 패로라는 미국 배우가 있다. 영화 '타잔'에서 제인 역으로 나온 모린 오설리번의 딸이다. 프랭크 시내트라, 앙드레 프레빈과 결혼 생활을 했고, 우디 앨런과 동거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등에 출연했다. 의외로 그는 부동산 업계와 경제학계에서도 유명하다. 뉴욕의 임대료 규제에 '미아 패로법(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미국에서 2차 대전 이후 돌아온 장병들이나 인플레이션에 고통받는 서민을 돕는다는 취지로 처음 도입됐다. 집주인이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하고 세입자를 내보낼 수도 없게 하는 것이 골자다. 뉴욕시는 1960년대 말부터 규모가 여섯 채 이상인 아파트에 대해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1990년대 뉴욕에 살던 패로도 덩달아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방 10여 개짜리 고급 주택에 사는데 매달 2900달러만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세는 1만달러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아 패로법은 비꼬는 뜻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법은 단기적으로 임대료를 내렸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에 빨려 들어갔다. 우선 규제에 묶인 임대료가 유지·보수 비용과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했고, 건물을 빈 채로 방치하는 주인들이 나타났다. 새로 짓는 사람은 물론 없었다. 새 주택 공급은 사실상 사라졌다. 집주인들은 대기자 명단을 만들어 자기 입맛에 맞는 세입자를 골랐다. 특정 인종은 안 받고, 애 없는 세입자를 좋아했다. 입주를 원하는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는 집 관리인도 생겼다. 뉴욕의 빈민가 형성을 이 법으로 설명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저술하고 전 세계 대학의 경제학 교과서로 쓰이는 '경제학의 원칙'은 "임대료 규제가 주택 공급의 양과 질을 떨어뜨린다는 명제에 경제학자 93%가 동의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임대료 규제를 도입한 대부분 국가에서 비슷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노벨 경제학상 선정위원장을 지낸 아사르 린드베크 스톡홀름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술은 폭격(爆擊)이고 그다음이 임대료 규제"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집중호우(集中豪雨)만큼 무섭게 부동산 관련 정책을 뿌리고 있다. 그중 가장 국민 피부에 바로 닿아 있는 것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집 보유자는 시세대로 못 올리고 세금 폭탄만 맞는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최대 5%로 임차료 상승을 막을 수 있게 된 세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일면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더 받으려는 집주인과 덜 내려는 세입자의 갈등은 치솟고 있다. "2년간 가족이 살게 한 뒤엔 새 세입자를 받아 가격을 시세대로 받겠다"는 집주인도 있고 "전셋값 8000만원을 한꺼번에 올려달라고 하고 한 푼도 안 깎아준 주인에게 무조건 더 살겠다고 통보했다"는 세입자도 있다. 이득을 얻겠다는 본능과 본능이 부딪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년 뒤부터다. 그때까지 규제받지 않는 신규 전·월세는 적든 많든 계속 생긴다. 2년 뒤 전·월세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아니면 내릴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세입자 체크 리스트가 돌지 모른다. 도배비를 더 내기 싫은 집주인은 어린아이가 없는 세입자에게만 월세를 주려 할 수도 있다. 아마 해외에서 들어와 2년만 한국에 머무는 세입자는 인기가 폭발할 것이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모두 장악한 여권이니, 부동산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최소한 경제학 교과서는 읽어보고 시작했는지는 궁금하다. 제발 완충 조항이라도 좀 만들기를 바란다.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전 세계에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