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오는 20일이 오기를 노심초사하고 있다. 교육부의 핵심 시스템인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운명이 그날 달렸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내년 시작하는 차세대 교육 시스템 구축 사업에 대기업이 일부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공문을 보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동안 같은 공문을 과기부에 3번 보냈는데 모두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아예 차세대 교육 시스템 프로젝트를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어서 네 번째 도전에 나선 것이다. 대기업을 압박해온 문재인 정부에서 한 부처가 다른 부처에게 자신들의 공공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 예외를 인정해달라며 네 번이나 요청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과기부는 오는 20일쯤 예외 인정 여부를 교육부에 통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부 부처가 “대기업 규제 예외를…”
2013년 개정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공공 부문 IT 운영·구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금지했다. 삼성SDS·LG CNS·SKC&C 등 대기업 3곳이 국내 IT 구축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자 공공 부문 프로젝트에서만큼은 이를 막고, 중소·중견 IT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매년 정부 부처·공공 기관이 지급하는 IT 운영·구축비는 5조592억원(2020년 추정치)으로 대규모 시장이다.
공공 IT 사업에 대기업 진출을 막아 놓고선 정작 정부 부처들은 핵심 전산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중소·중견기업에 맡기길 꺼렸다. ‘국가 안보’나 ‘신기술 활용’의 경우에 한해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는데 부처마다 이를 근거로 대기업에 사업을 맡겨온 것이다.
국방부·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법무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 등이 이렇게 예외를 인정받아 부처의 핵심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관세청·조달청·대검찰청·우정사업본부·기상청이나 한국전력공사·공무원연금공단과 같은 공공 기관, 그리고 서울시·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까지 그동안 공공 부문 프로젝트 179건이 국가 안보나 신기술 활용이라는 이유로 예외 인정을 받았다.
◇규제 예외 4수 도전하는 교육부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학생 성적 처리, 출·결석, 학사 일정 등 교육 행정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전산 시스템이다. 대입 자료로도 쓰인다. 애초 2022년 3월부터 4세대 시스템 가동이 목표였다.
교육부는 작년 말 과기부에 ‘국가 안보에 중요한 프로젝트’라는 예외 사유를 들어 신청서를 냈다. 이에 대해 중견 IT 기업들은 2800억원짜리 프로젝트까지 예외로 인정해주면 법의 실효성이 없어진다면서 반발했고, 일부에선 학사 정보 시스템이 국가 안보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교육부가 중소·중견 IT기업에 맡기지 않으려는 이유는 나이스 사업 자체의 중요성도 있지만, 과거 겪은 사고 트라우마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11년 3세대 나이스를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적 오류 사태가 발생했는데 당시 사업을 맡은 삼성SDS가 100억원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곧바로 문제를 해결했다. 교육부 입장에선 중소기업이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수백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네 번째 신청서에 예외 이유를 ‘국가 안보’에서 ‘신기술 활용’으로 바꿨다. 교육부는 “디지털 원격수업 인프라 구축 등 신기술이 도입되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며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기업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규제 폐지 논란으로 확대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과기정통부의 박준국 과장(소프트웨어산업과)은 “예외 인정 신청 사안이 있으면 관련 규정에 따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독립적·중립적으로 심의 처리한다”고 말했다. 3번의 반려는 물론이고 이번 4번째 판단도 과기정통부가 아닌 15명 안팎으로 구성된 민간심의위 결정에 따른다는 의미다. 과기부는 지난 12일 열린 심의위 회의 결과에 따라 오는 20일쯤 교육부에 최종 입장을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에선 “규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규제 이후 공공IT 시장에서 대기업이 빠지자 중견IT 기업이 활개를 쳤고 소규모로 하청받는 중소SW(소프트웨어) 기업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는 주장이다. 중소SW기업 수익률은 2012년 4.9%에서 2017년 2.18%로 떨어졌다. 공공 SW의 수출이 감소한 것도 규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액은 2015년 5억3404만달러(약 6300억원)에서 2018년 2억5832억 달러로 감소했다. IT 대기업 임원은 “해외 공공 기관이나 정부 사업을 따내려면 자국 내 실적이 필요한데, 규제 탓에 국내 IT 대기업은 해외 경쟁에서만 불리해진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