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업계 전반의 하강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언론 기업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이다. 2009년 1분기(1~3월) 4달러대였던 이 회사의 주가(株價)는 이달 들어 43~47달러를 기록 중이다. 한때 10억달러까지 추락했던 시가총액은 73억달러로 불었다. 올들어 주가 상승률만 44%에 달한다.

뉴욕시내 맨해튼 일대에 위치해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모습

마크 톰슨(63) CEO는 이런 ‘나홀로 호황’의 핵심 주역이다. 2012년 11월 그의 취임 당시 50여만명이던 NYT 온라인 유료 가입자가 올 2분기 570만명으로 급증한 게 이를 보여준다. 종이신문 유료구독자(80여만명)를 포함한 NYT의 유료 구독자 수(650만명)는 세계 언론사 가운데 압도적 1위이다.

2013년 15억7723만달러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18억1218만달러로 늘었다. 올 2분기 NYT의 ‘디지털 구독’ 부문 매출은 1억8550만달러(약 2204억원)로 종이신문 구독 매출(1억7540만달러)을 추월했다. NYT는 세계 미디어 업계에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성공한 유일한 회사로 평가된다.

2012년 11월부터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전환 작업을 총괄지휘해 성공시킨 마크 톰슨(Mark Thompson) CEO

다음달 퇴임하는 톰슨 CEO는 지난달 말(맥킨지 컨설팅)과 이달 10일(CNBC 방송) 각각 사실상 ‘고별 인터뷰’를 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등을 중심으로 NYT의 4가지 디지털 성공 전략을 분석했다.

①"종이신문에서 '문화 상품'으로 발상 전환"

“2013년 초 NYT 편집국은 놀랄만한 종이신문을 만든 뒤, 그걸 갖고 웹사이트를 내고 있었다. 또 ‘NYT는 신문사이며, 디지털은 특별한 일이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반대였다.”

톰슨 CEO는 “외부에서 온 아웃사이더인 나는 NYT에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봤다”며 “훌륭한 스마트폰 뉴스상품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서 웹사이트를 만들고, 다시 이를 큐레이션(curation·재분류)해 종이신문을 만드는 방식으로 회사 업무를 재정의했다”고 밝혔다.

마크 톰슨 NYT CEO가 2019년 6월2일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에서 노르웨이 스타트업 랩 대표인 티나 스티에글러와 대담하고 있다.

또 “뉴스는 헤드라인이나 딱딱한 스토리들 같은 한 종류만이 아니다. 뉴스는 정교한 문화 상품(a sophisticated cultural object)이다”라며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동영상과 음원서비스 제공업체인)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에 대해서처럼 식별할 줄 아는 이용자들이 NYT의 프리미엄 콘텐트에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방법을 짜냈다”고 했다.

“다른 많은 미디어 기업에서처럼 미래를 해결하는 대답은 과거에 있었다. NYT가 발행해온 문화, 엔터테인먼트, 음식, 부동산 같은 라이프스타일 섹션에 주목했다. NYT를 통해 이용자들이 아파트 정보, 브로드웨이 뮤지컬 정보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상을 발전시켜 탄생한 것이 2017년과 2016년 각기 디지털 유료 구독서비스로 전환한 쿠킹(Cooking), 십자말 퀴즈(Crossword Puzzle) 같은 서비스 저널리즘 상품이다. 두 상품의 지난해 매출액은 1000만달러에 달한다. 올 2분기 현재 110만여명의 두 상품 유료 구독자는 NYT 디지털 콘텐츠의 열렬한 소비자들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유료 회원제 상품인 쿠킹(Cooking).

임현찬 한국외대 교수(디지털 미디어 전공)는 "NYT는 디지털 개발자와 멀티미디어 PD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주고 인공지능(AI), 가상현실, 인포그래픽 등에서 최신 디지털 기술을 콘텐츠에 담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쇠락하던 NYT의 부활은 CEO의 강력한 리더십과 경영의 힘 덕분이 크다"고 말했다. ②"1년여 끝장 토론 등으로 비전과 공감대 구축"

톰슨 CEO는 맥킨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공유하는 비전을 갖기위해 밀도높은 대화(intense conversation)를 했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초부터 11월까지 최고위 임원 5~6명이 매주 금요일 낮12시부터 회의를 시작해 매번 저녁 6시 또는 7시까지 6~7시간 토론을 했다. 이런 논쟁과 외침은 1년 가까이 계속됐다.”

무조건 디지털 드라이브를 밀어붙이지 않고 그는 명확한 비전 설정과 이에 대한 전사적(全社的) 공감대 확보에 주력한 것이다. 2014년 3월 ‘혁신 보고서(Innovation Report)’를 시작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Our Path Forward·2015년 10월)’ 전략 메모, ‘독보적인 저널리즘(Journalism that stands apart·2017년 1월) 보고서…. 실제로 톰슨 CEO는 평균 1년 6개월꼴로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체질 쇄신을 촉구하고 세부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2014년 3월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혁신 보고서'

최종판 격인 '독보적인 저널리즘' 보고서는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우리는 페이지뷰(page view) 경쟁을 하거나 싸구려 광고를 팔려하지 않는다. 우리의 비즈니스 전략은 전 세계 수백만명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는 저널리즘을 강력하게 제공하는 '구독 최우선(subscription-first)' 회사이다."

톰슨 CEO는 “종이신문에 특화된 분업 방식을 벗어나 부서간 경계를 넘어 일하는 통합 조직으로 사내 문화를 바꾸었다”며 “지금 NYT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사원들이 고참 리더들에 신경쓰지 않고 상품개발과 기술 로드맵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조직이 됐다”고 말했다.

③"리더십 교체…젊고 유연한 조직으로 변신" 그는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힘들었다"며 "소비자 태도가 달라지고, 경쟁 환경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조직도 적응성과 유연성이 높은 리더들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리더들을 교체했다"고 밝혔다.

“지금 임원들 가운데 내가 취임할 때 있던 이는 1~2명이다. 우리는 매우, 매우 깊은 변화(very, very deep change)를 목도했다”고 했다.

2020년 9월8일 NYT 사상 최연소 여성 CEO로 취임하는 메레디스 코피트 메레디언 현 COO(최고운영책임자)

일례로 톰슨 CEO는 경제잡지 ‘포브스’ 광고책임자로 있던 42세의 메레디스 레비언을 2013년 7월 NYT 광고 책임자로 스카우트했다. 디지털 혁신 광고에서 성과를 낸 그녀는 2015년 NYT 사상 최초의 여성 최고매출책임자(chief revenue officer)로 승진했고,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다음달 8일 최연소 여성 CEO에 취임한다.

공영라디오방송 NPR 출신인 킨시 윌슨을 2015년 상품·기술 담당 부사장으로 발탁했고, 핀터레스트·허핑턴포스트·버즈피드 같은 스타트업(신생 기업) 출신들도 대거 중용했다. 톰슨 CEO는 "새 리더들과 함께 수시로 디지털 조직 개편을 했다. 다섯번 실패 끝에 6번째 옮은 길에 들어섰다"고 했다. 기자, 데이터 과학자, 엔지니어 등을 집중 채용해 2013년 1300명이던 편집국 인원은 지금 1750명이 됐다. 169년 NYT 역사상 가장 많은 규모이다.

뉴욕타임스 본사 편집국 내부 모습. 복층형 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내 구성도 확 달라졌다. 작년 말 현재 밀레니얼 세대(만 22~37세) 비중이 49%에 달한다. 톰슨 CEO는 “수년 전 NYT를 보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는 5명 중 1명 꼴이었으나 지금은 2 명 중 1명 꼴이 됐다”고 했다. NYT가 20~30대와도 잘 소통하는 젊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신했다는 얘기다.

④"社主 가문의 전폭 지원…그리고 솔선수범"

“2012년 하반기 (NYT의 사주인) 설즈버거 가문 구성원들은 나에게 CEO직을 맡아달라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급진적인 변화를 지원하겠다(We will back radical change)’고 말했다. 나는 가문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 인간적 평가 끝에 그들을 믿었다.”

톰슨 CEO는 “지금까지 사주 가문과 이사회는 NYT에서 내가 시도하는 모든 일들을 강력하게 지지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다”고 했다.

톰슨에 대한 가문의 전폭 신뢰는 2014년 5월 분명하게 확인됐다. NYT 역사상 최초의 여성 편집인으로서 임명된지 2년 8개월된 질 애브람슨이 디지털 부문 매출을 늘리려는 톰슨과 계속 충돌하자,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 당시 발행인이 애브람슨을 전격 해고한 것이다.

2011년 9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뉴욕타임스 사상 첫 여성 편집인(executive editor)이었던 질 애브람슨(Jill Abramson)

또 논설실도 회사 수익 창출 기여토록 하기 위해 퇴임해 있던 트리쉬 홀 전(前) 논설실 부실장을 2015년 9월 다시 채용하려 하는 것도 설즈버거 발행인은 승인했다. 톰슨 CEO는 “우리(나와 설즈버거 가문)가 ‘변화를 위한 야망(ambition for change)’을 공유했기에 이런 것들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2019년 1월31일 오후 백악관 오벌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 앉아 있는 A.G. 설즈버거(오른쪽에서 두번째) NYT 발행인. 그는 양 옆에 있는 2명의 NYT 백악관 출입기자와 함께 대통령 회견을 했다. A.G.설즈버거 발행인은 미국 대통령과의 비공개 단독 식사나 비보도 조건 만남을 사양하고, 이런 공개 미팅을 고집한다.

설즈버거 가문은 ‘디지털 전환’에도 앞장섰다. 2019년 1월31일 오후 4시30분부터 1시간 30분 넘게 백악관 오벌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견한 A.G. 설즈버거 현 발행인이 대표적이다. 그는 다음날 오전 6시 방송되는 NYT의 인기 팟캐스트 ‘더 데일리(The Daily)’ 제작진으로부터 출연 인터뷰 요청을 받고, 당일 예약했던 오후 6시30분 워싱턴 DC 발(發) 뉴욕행 기차표를 취소하고 30분짜리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의심품고 봤던 NYT의 디지털 전환 작업은 모든 사원과 경영진, 심지어 사주(社主)들까지 솔선수범하며 일심동체가 됐기에 성공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