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수도권의 한 의료진이 자신의 의사 면허증을 갈기갈기 찢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21일 오전 7시부터 전국의 인턴·레지던트(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등에 반발해 순차적인 무기한 파업을 시작한 가운데, 보건 당국이 전공의들의 ‘의사 면허 정지’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온라인 공간에서 의사들이 “내 면허부터 정지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내_면허번호는’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각자의 의사 면허증이나 의사 면허 번호를 쓴 종이를 들어 보이며 공유하는 ‘면허번호 챌린지’를 시작한 것이다.

◇정부 ‘면허 정지’ 시사에 반발…의사들 “내 면허부터 정지”

발단은 이날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 나선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의 발언이었다. 김 차관은 정부가 지난 20일 밝힌 ‘(의료계) 집단 휴진에 대한 법과 원칙에 따른 구체적 대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료법에 의한 진료개시명령과 이 명령에 불응할 경우에 대한 조치들이 있다”며 “형사법도 있겠지만 (의사)면허에 가해지는 조치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현행 의료법에 따라 진료개시명령 위반에 따른 의사면허 자격 정지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김 차관의 발언을 접한 의사들이 이를 ‘협박’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반발하기 시작했다.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는 페이스북에 “코로나 확산으로 엄중한 지금 국민을 볼모 잡은 정부는 젊은 의사들에게 ‘의사 면허 정지’를 운운하며 겁박하고 있다”며 “전공의 선생님들 의사 면허 정지하시려면, 먼저 제 면허부터 정지하시길 정부에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조 이사는 그러면서 ‘면허 번호를 종이에 적은 사진을 SNS에 올려 젊은 의사들을 응원하고자 한다’며 주변 의사들의 동참을 제안했다.

면허번호 챌린지는 소셜미디어 사용이 친숙한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 수도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국가라는 힘을 앞세워 부정한 방법으로 내 제자들과 후배들의 면허를 정지시키겠다면 내 면허 또한 필요 없다”며 자신의 의사 면허증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사진을 올렸다. 한 안과 전문의는 자신의 의사 면허번호를 인쇄한 종이를 들고 “표정은 웃고 있지만, 진지하다”고 적었다. 일부 의사들은 면허 번호가 적힌 종이를 든 자신을 “교도소 담벼락을 걷고 있는 예비 죄수”라 표현하기도 했다.

◇의료계 “K-방역 의료진 덕분이라더니…”

의료계는 “코로나 K-방역의 성공은 ‘의료진 덕분’이라고 추켜세워주던 정부가,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 의대 정원 확대 등 정책을 추진하면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니까 가만히 있으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보건 당국의 10년간 의대 정원 4000명 확대, 첩약(한약) 급여화, 원격의료 추진, 공공의대 설립 정책 등을 ‘의료 4대 악(惡)’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회해달라 요구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10년 뒤에 효과가 있을지 검증되지 않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하필 의료진과 정부가 힘을 합쳐 코로나에 대응해야 하는 시기에 꺼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일단 코로나 사태를 넘기고 제대로 된 토의를 거쳐서 확실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때 다시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