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으로 유명한 ‘컬리’ 등 상장하지 않은 유망 스타트업의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거래 방식도 어렵지 않아 장외 주식 거래량도 1년 만에 두 배 늘었다.

직장인 최모(30)씨는 최근 상장을 앞둔 아이돌 그룹 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사려고 비상장 주식 거래 앱 '증권플러스 비상장'을 설치했다. 그는 "빅히트는 이미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장만 되면 초대박이 난다고 본다"라고 했다. 증권플러스 앱에서는 중고나라·당근마켓 같은 중고 매매 사이트처럼 게시판에 특정 주식을 사거나 판다는 글을 올려서 거래를 한다. 21일 게시판엔 빅히트 주식을 주당 1만~5만원에 사겠다는 글이 1000개 넘게 보였다. (21일 현재 매물이 동난 상태다.)

빅히트·크래프톤 등 스타트업의 상장 기대감이 커지면서 스타트업 지분을 사고파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다. 상장 전 스타트업 주식은 대부분 창업자나 직원이 보유하고 있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그 회사에 취직하는 게 최선'이란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거래 플랫폼이 여럿 생기면서 개인이 투자할 기회도 늘어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장외시장에서 거래된 주식 대금은 1581억8175만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797억7838만원)의 2배 수준에 육박한다.

◇배틀그라운드·토스·무신사 등 인기

'개미'들은 주로 상장하지 않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급 주식을 사길 원한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나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 회사 크래프톤, 송금 앱 '토스'로 시작해 인터넷 은행에까지 진출한 핀테크 회사 비바리퍼블리카 등이다. 아울러 숙박 플랫폼 야놀자, 패션 스타트업 무신사, 새벽 배송을 유행시킨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 등의 주식이 인기다. 매출이 탄탄하게 늘고 있으면서도 아직 상장 전인 스타트업들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한국 유니콘 기업 11개 중 한 곳(에이프로젠) 빼고는 아직 상장을 하지 않았는데, 이 주식을 미리 획득하고자 하는 이들이 장외시장으로 몰린다.

증권플러스 비상장 앱 내 화면 모습

이 회사들의 주주가 되는 방법은 한정돼 있다. 초기 벤처투자자 또는 임직원이 보유한 주식을 사는 수밖에 없다. 예전 같으면 이 주식을 알음알음으로 구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플랫폼을 통해 투자할 길이 많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두나무와 삼성증권이 함께 만든 '증권플러스 비상장', 피에스엑스(PSX)라는 스타트업이 개설한 '판교거래소'를 비롯해 코스콤이 지난 4월 연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비마이 유니콘' 등이 여기 들어간다. 유안타증권이 만든 '비상장레이더',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이 만든 '네고스탁' 등에서도 스타트업 주식이 거래된다.

◇직거래 아닌 펀드투자 '엔젤리그'도

투자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어렵지는 않다. 거래소 게시판에 올라온 스타트업 주식을 클릭하고 원하는 수량을 입력하면 게시판에 글이 올라간다. 이 글을 본 매도인이 1대1 채팅창을 열고 이 안에서 주식을 사고판다. 이 플랫폼들은 일종의 '안전장치'를 매매 당사자들에게 제공한다. '가짜'를 막기 위해 매도자가 실제 주식을 보유했는지, 사려는 사람은 돈을 실제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주로 에스크로(제3자 예치) 방식을 쓴다. 매도자는 에스크로에 주식을 위탁하고, 매수자는 돈을 예치하는 방식이다. 강유경 두나무 부장은 "삼성증권의 안전거래 시스템을 접목해 인증받은 회원들만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증권플러스 비상장'을 통해 성사된 주식거래 건수는 19일 현재 1만5896건이다. 작년 11월 오픈해 약 7개월 동안 거래 건수가 1만건 정도였는데, 7월 한 달 동안만 약 6000건 거래가 성사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엔젤리그

직거래가 불안하다면 펀드(조합) 방식으로 투자하는 방식도 열려 있다. 지난 3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엔젤리그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엔젤리그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투자를 모집한다는 글이 보인다. 이 투자는 '리드엔젤'이라 불리는 이들이 주도한다. 리드엔젤은 창업자, 벤처캐피털 심사역 등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지분을 합리적인 조건에 확보할 협상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맡는다. 리드엔젤이 목표 금액, 주당 매수가, 모집 기한을 정해놓으면 인당 최소 참여 금액(통상 200만~600만원) 이상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엔젤리그 오현석 대표는 "개인이 내놓는 스타트업 주식은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며 "엔젤리그는 리드엔젤이 조합을 만들어 주식을 확보하면 개인이 조합원이 돼 투자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엔젤리그 투자자는 회사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대신, 해당 펀드의 지분을 갖게 된다. 엔젤리그에서는 현재(8월 20일 기준) 컬리·크래프톤·뷰노·카카오게임즈 등 비상장 스타트업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예측 어려운 스타트업… '위험' 감안해야

스타트업에 투자할 길이 열렸지만 '무조건 대박'이라는 건 아니다. 이미 '유니콘'에 근접했다고 해도 언제 상장을 하거나 다른 기업과 인수·합병을 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아 기업 가치가 급락하거나 파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국내에 진출했던 세계 최대 공유 자전거 업체 '오포'는 부채 3400억원을 감당 못 해 파산 신청조차 하지 않고 임직원이 잠적해버렸다. 한때 기업 가치 4조7000억원을 인정받은 국내 유니콘 옐로모바일은 재무구조 악화로 존폐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기업에 비해 시장에 공개된 정보가 제한적이거나 불투명하다는 점도 문제다. 퓨처플레이 신채호 책임심사역은 "비상장 주식은 일반인들에게 정보가 많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섣부른 투자는 위험을 수반한다"며 "거래 절차, 기대 수익 등에 대한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가 함께 마련되고 나서 투자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