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최근 애플 주가가 미국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2조달러(약 2400조원)를 넘었다. 이는 애플의 가치가 우리나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가치보다 6배 높을 뿐만 아니라 세계 GDP 순위 12위인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20% 이상 상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놀라운 것은 애플이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선 후 불과 2년 만에 그것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2조달러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애플의 가치만 오른 것이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의 가치도 크게 올라 이 다섯 기업의 가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ICT 기업들도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광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세계 주요 증시에 상장하면서 가치를 높였다. 그 결과, 전경련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톱100 ICT 기업에 미국 기업 57곳과 중국 기업 12곳이 포함됐다. 일본 기업도 11곳, 유럽 기업 10곳, 인도 기업 3곳이 포함됐지만 정작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 하나만 들어가는 데 그쳤다. 2012년 12월에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또 하나의 왕좌 게임'이라는 기사에서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위상을 지도에 표기했는데, 여기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만 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삼성전자는 ICT 대륙의 영토는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로 묘사되는 데 그쳤다.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나 통신사들이 내수용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삼성전자가 IC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의 체면과 실리를 살려주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삼성전자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번듯한 ICT 대표 기업조차 보유하지 못한 변방 국가로 취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미국을 방문했을 때 실리콘밸리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에 재직한 경력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삼성전자 경력만 제대로 인정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들 눈으로는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삼성전자 정도만이 글로벌 수준에 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장난감, 가발 등 임가공 제품을 주로 수출하던 우리나라가 반도체, 휴대폰, TV 강국이 된 데는 사실 삼성전자의 공이 크다.

우리 경제는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서는 생존과 발전이 어렵다. 따라서 삼성전자처럼 우리나라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진출하여 경제적 영토를 개척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은 충분한 존중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지난 몇 년간 사법적 위험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마침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를 내렸으므로 이제는 삼성전자의 사법적 위험이 조속히 해소되어야 한다.

경기도 신탄리역 철도 중단점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We want to be back on track)'는 팻말이 서 있다. 이 팻말은 남북 간 철도 연결이 한반도 평화와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데도 북한의 조치로 중단되어 있는 안타까운 우리 현실을 잘 대변한다. 철마는 다시 달려야 하고 삼성전자 역시 글로벌 운동장에서 다시 달려야 한다. 철마가 달려야 한반도 평화가 가까워지고 삼성전자가 글로벌 운동장에서 달려야 우리 경제가 미국이나 중국 틈새에서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