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죽음, 슬픔, 장례식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문화 콘텐츠 주제가 될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며 죽는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유행병은 분명히 기억하게 했다. 죽음은 현재 우리의 적(敵)으로 간주된다. 전염병 탓에 가족과 친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닥치면서, 죽음을 뒤로 숨기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 이때 예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언제나 예술은 불멸을 지향하는 간절한 몸짓이었고, 삶의 충만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경제학자 겸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77)가 말했다.

자크 아탈리는 “향후 문화·예술 향유에 마스크의 기술 발전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현재 유럽은 한국만큼 마스크 착용에 철저하지 않다”고 했다.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화를 전망하는 '2020 문화소통포럼'이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등 주최로 26일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화상 연결을 통해 연사로 참석한 아탈리는 "흑사병 이후 자가 격리된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미식 문화 '테이블 아트'를 만들어냈듯, 전보다 예술적인 행위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타인 대신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자기애(自己愛)'와 관련이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격리 기간에 도예나 악기 연주 등을 시작하는 사람이 늘었다. 하다못해 모바일 동영상 공유 앱 '틱톡'으로 자신을 촬영하는 식으로, 미래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것이다. 자아도취성 사회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날 축사에서 한국계 2세 프랑스 디지털부 장관 세드리크 오(38)가 "오프라인 공연장에 갈 수 없는 관객을 위해 프랑스판 '연극 넷플릭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하자, 아탈리는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현대 예술을 위해 기존에 없던 예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이것을 그는 "미래의 가면무도회"라고 했다. 디지털과 가상현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력으로 떠오르지만 아탈리는 "가상이 빈번해지면서 '무엇이 진짜인가'에 대한 질문이 대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상의 세계에서 진실은 사라지기 쉽다. 사람들은 건조한 진실보다 더 스펙터클한 것, 선동적인 것을 보여주려 할 테니까. 하지만 다음 시대에도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거짓 아니면 진실일 따름이다."

또 다른 예측도 등장했다. 스페인 소설가 하비에르 모로(65)는 "유행병이 인류의 습관과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거라는 믿음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며 "인류는 수차례 팬데믹 종식 후 으레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2003년 영국 부커상 심사위원을 지낸 영국 작가 프란신 스톡(62)은 "디지털 문화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풍요로운 선택을 돕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탈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우리는 계속 귀를 열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창조하자. 발명하자. 보기 힘든 것을 보러 가자. 스스로 예술가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