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머지않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미국 워싱턴 대학 연구진은 2035년쯤 중국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고, 중국 국무원 산하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은 그 시점을 2032년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경제 규모에 걸맞은 위상을 갖게 될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생각은 ‘노(No’) 였다.

11일 열린 조선일보 주최 ‘제1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국제경제 석학 로버트 배로(오른쪽)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대담을 가졌다. 배로 교수는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초강대국 지위를 뺏어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11일 조선일보 주최 ‘제1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연사로 참여한 배로 교수는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과의 대담에서 “중국이 GDP 면에서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초(超)강대국의 지위를 뺏어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글로벌 리더십은 GDP로 표시되는 경제 규모가 아니라 1인당 GDP로 표시되는 국민의 삶의 질과 더 밀접하게 관련 있다”며 “중국이 2030년대 GDP로 미국을 앞선다 해도 1인당 GDP 면에서는 도저히 추월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1인당 GDP 예상치는 1만839 달러로 미국(6만3051달러)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배로 교수가 1인당 GDP를 강조한 이유는 한 국가가 진정한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hard power)뿐 아니라 학문, 예술, 문화 같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로 교수는 이런 소프트 파워가 복지나 인권 같은 국민의 삶의 질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전 이사장은 “중국 경제에 약점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주요 국가 중에서 중국의 부채가 가장 높은 수준이고, 이에 더해 급속하게 노화를 겪고 있는 국가”라고 지적했다. 배로 교수는 “중국은 1970년대부터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여전히 지역별로 균형적인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의 팽창주의적 외교정책과 거버넌스(통치체계)도 글로벌 리더로 올라서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봤다. 전 이사장도 “중국은 전세계 경제를 이끄는 국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해봤을 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GDP 추이

전 이사장은 주제를 미국 대선으로 끌고 갔다. 전 이사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시작하면 미중 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배로 교수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미국 정부의 대중 정책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은 개방된 자유무역을 선호하지만, 중국에 대해선 국가 보안과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화웨이 사태' 등을 볼 때 이런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이라며 미·중 간 갈등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미·북 관계에서 중국 역할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전 이사장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인데, 바이든 당선인은 보톰업 어프로치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배로 교수는 “북한 이슈는 새로운 게 아니다”며 “트럼프 정부도 대북 정책을 사실상 실패한 상황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집권해도 큰 진보를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배로 교수는 또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므로 전 세계를 위해 (북한 관련) 역할을 해야 하지만, 중국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며 “향후에도 그렇게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

전 이사장은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표적인 친한파 경제학자인 배로 교수는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배로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 등 1회성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간 나중에 재정적자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예로 들며 “소득 재분배나 노동 관련 정책에서 한국 정부가 너무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장기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국정을 운영해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로벌 경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세계 경제가 ‘V자형 반등’을 확실히 하고 있다”며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지난 봄과 초여름에 어려웠던 현실을 고려하면 이미 상당한 회복을 이뤘다”고 말했다. 배로 교수는 “백신 개발 소식을 비롯해 최근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내년 4분기가 되면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완전한 정상화가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에 전 이사장은 “(배로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희망적인 생각을 가져도 될 것 같다”며 “백신 개발 뉴스가 코로나 종식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