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잠깐 기차 세워. 뭐 좀 봐야겠어.”
“예?” 수행원은 갑작스런 박정희 대통령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정 없이 기차가 멈춰선 곳은 경부선 철로변에 위치한 경북 청도군(淸道郡) 청도읍 신도리(新道里)였다.
박 대통령이 차창 너머로 본 것은 신도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홍수로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의 지시로 수행원들은 기차에서 내려 마을을 살펴본 결과 집은 개량된 지붕으로 단장돼 있었고, 마을 안길, 마을 뒷산의 산림가꾸기 등 마을 전체가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마을주민들은 “기왕 마을을 복구할 바에야 좀 더 잘 만들어 보자고 마을총회에서 결의했습니다. 주민들이 하나같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행원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그래 바로 저거다. 농촌이 잘 살려면 농민들 스스로가 일어서야 한다. 그 토대를 정부가 만들어주고 지원하자.”
1969년 8월초 당시 기습폭우로 전국이 아수라장으로 변하자 피해가 가장 큰 경남지역으로 둘러보기 위해 박 대통령이 전용열차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회고록 ‘한국경제정책 30년사’, 김수학 체험 현대사 ‘이팝나무 꽃그늘’ 등에 실린 내용이다.
박 대통령의 획기적인 농촌개발 구상은 이처럼 청도에서 싹을 틔웠다. 당시 청도읍 신도리 주민들의 자조·협동심을 대통령이 목격한 뒤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게 된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새마을운동 최초 발상지 청도읍 신도리
청도는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제창한 1970년 4월 22일 이전부터 새마을운동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시행한 곳은 청도읍 신도리, 화양읍 합천리, 운문면 방음리다.
새마을운동 최초 발상지인 신도리는 1957년 농촌 환경개선사업부터 시작했다. 주민들은 마을 뒤쪽 골짜기 뒤실마을과 아래쪽 새터마을을 연결하는 일명 ‘토끼길’ 2.5km를 40여일 만에 폭 4m의 새 농로로 만들었다. 1959년엔 부엌, 담장, 재래식 화장실 개량 등을 진행한데 이어 1961년에는 부업 장려사업으로 가구당 감 50그루, 복숭아 10그루, 사과 1000 그루 갖기 운동을 전개했다. 1963년에는 생활개선 구락부 운영, 1통장 갖기운동, 새마을금고 육성 등도 시행됐다. 1967년에는 총 공사비 70만원 중 마을주민이 절반을 부담해 신거역마저 개통했다. 현재까지 신거역은 청도 새마을운동의 대표적 상징물이 됐다.
◇역사적 가치 재조명…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청도군은 2009년 청도읍 신도리 일원(부지면적 13만6473㎡)에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을 조성했다. 1960∼70년대 빈곤한 시절을 극복한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다.
국내·외 정신교육의 장으로 이용되는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건물 1층은 신도마을 이야기를 시작으로 새마을운동의 탄생배경과 변천사, 성과, 청도군의 과거와 현재의 새마을운동, 연도별 당시의 각종 사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 현황들을 소개하고 새마을 성공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곳이다.
새마을광장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신도마을의 인연을 이어준 대통령 전용열차, 대합실의 모습을 되살린 신거역사(驛舍), 대통령 동상, 복원한 신도정미소 등이 꾸며져 있어 옛 시절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마을과 이어지는 새마을테마파크는 2015년도에 건립됐다. 새마을운동의 단위사업을 생동감 있게 재현한 ‘잘살아보세관’, 70∼80년대 세대가 다녔던 새마을학교, 새마을구판장, 왕대포집, 시대별 지붕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새마을시대촌(초가·슬레이트·기와)’ 등 당시 다양한 소품과 시대상이 전시돼 있다.
이색적인 체험거리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선 테마공간을 다니며 체험하는 새마을생활 스탬프 투어, 추억의 오락게임, 한여름 밤의 새마을파수꾼 공포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청도군은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이 있다면 어디든지 방문해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신도마을은 2016년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9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됐다.
청도군은 새마을운동발상지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데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김유선 청도군 홍보계장은 “새마을운동과 정신은 과거에도 유효했지만 현재와 미래에도 계승돼야할 실천운동이다”며 “청도군이 꿋꿋이 새마을운동 확산에 노력하는 이유는 새마을운동 정신이야 말로 미래를 보장하고 윤택한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랑정신의 뿌리 이어가는 청도
청도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외에도 화랑정신의 발상지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청도가 화랑정신의 발상지인 근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다. 여기엔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와 관련된 내용이 전해진다.
서기 600년(신라 진평왕 22) 중국 수나라로 유학 갔던 원광법사가 왕경인 경주로 돌아오지 않고 청도의 운문산 인근의 사찰인 ‘가슬갑사’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당시 원광법사가 청도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신라의 귀산과 추항, 이 두 화랑은 직접 찾아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침으로 삼을 만한 가르침을 청한다. 이때 원광법사는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 다섯 실행정신을 알려준다. 그래서 세속오계가 화랑의 행동지침으로 보편화됨으로써 청도가 화랑정신의 발상지가 된 것이라고 한다.
청도는 신라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추진한 서진정책의 중요 거점이었다. 당시 화랑들은 이곳에서 수련장을 만들어 삼국통일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았다. 현재 청도에는 심신을 수련했던 화랑과 관련된 지명과 흔적이 남아 있다. 화랑들이 장육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말을 달려 깃발을 꽂는 의식을 하던 발백산, 장수들이 좌선하며 수련한 흔적이 남아 있는 육장굴, 훈련할 때 밥을 짓기 위해 솥을 걸었던 솥바위, 군사훈련을 한 장군평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체험관광의 명소 청도신화랑풍류마을
청도군은 화랑정신과 새마을정신을 합해 ‘청도우리정신’ 이라는 문화자산 브랜드를 내세워 정신문화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군은 2018년 3월 화랑정신의 명맥을 계승하기 위해 운문면 방지리 일원에 대표적 교육·관광지인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을 조성했다.
경북도 3대(신라·유교·가야)문화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은 단체 관광객들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200명 이상 숙식 가능한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문화·예술 공연 및 각종 세미나를 위한 대강당과 워크숍·연회를 위한 다목적홀, 화랑수련을 위한 체험교육실과 국궁장, 신체단련을 놀이를 통해 체험하는 화랑수련장도 인기다. 특히 캠핑족을 위한 화랑카라반·오토캠핑장, 산책로 등도 마련돼 코로나 시대 안전하고 고즈넉한 언택트 여행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이밖에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화랑정신과 청도의 신(新)화랑정신을 테마로 꾸며놓은 화랑정신발상지기념관, 가상현실에서 승마, 궁술, 검술을 체험하는 화랑VR체험존, 힐링공간 명상실은 주말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코스다.
최근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이 교육·관광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공공기관, 기업체, 청소년단체 등의 교육은 물론 연수, 수련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들이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이승율 청도군수는 “청도는 삼국통일의 정신적 원동력이 된 화랑정신의 발상지이자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다”며 “정신문화의 고장답게 지금까지 진행해온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 등을 더욱 확대 추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