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찾은 유용물질을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치지 않고 마치 버클을 채우듯 미리 만들어둔 기본 단위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아낸 과학자들이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화학의 기능주의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화학산업은 물론, 신약 개발과 암 연구에 이르기까지 분자가 관여되는 다양한 곳에서 물질 합성의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였다는 것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5일 “캐럴린 버토지(56)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모르텐 멜달(68)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배리 샤플리스(81)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교수가 클릭 화학과 생물 직교 화학을 개발한 공로로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화학자들은 지금까지 자연에서 유용한 물질을 찾아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쳐 모방했다. 이 과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유해한 부산물이 나오는 문제도 발생했다. 노벨 화학위원회의 요한 아크비스트 위원장은 “올해 수상자들은 복잡한 물질을 다루지 않고 쉽고 단순한 물질로 바로 기능을 가진 분자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평가했다.
배리 샤플리스 교수는 2001년 비대칭 산화반응에 대한 연구로 이미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다른 수상자들이 평생 한 주제만 연구한 데 비해 샤플리스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해 ‘클릭 화학(click chemistry)’이라는 새로운 연구 주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클릭 화학은 말 그대로 간단한 구조의 물질을 마치 버클을 채우듯 연결해 원하는 기능의 분자를 합성하는 방법이다.
화학합성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분자에서 온 탄소들을 연결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그런데 출처가 다른 탄소는 다른 나라에서 와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서로 대면대면하다. 이들을 억지로 이어주려고 통역사와 같은 인위적인 활성화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원치 않는 부수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물질이 낭비된다.
샤플리스 교수는 이미 완전한 탄소 뼈대를 가진 작은 분자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을 반응력이 좋은 질소와 산소 원자들을 다리 삼아 연결했다. 코펜하겐대의 멜달 교수는 같은 시기 구리 이온을 촉매 삼아 질소 원자로 이뤄진 아자이드와 탄화수소 고리를 버클처럼 끼우는 방식을 개발했다.
스탠퍼드대의 버토지 교수는 클릭 화학을 살아있는 세포에 적용했다. 이른바 ‘생물 직교 화학(bioorhogonal chemistry)’이다. 암세포는 표면의 당사슬을 이용해 인체 면역체계를 회피할 수 있다. 버토지 교수는 먼저 질소 원자가 붙은 버클을 암세포에 넣어 표면의 당사슬에 연결시켰다. 다음에는 질소 버클에 탄화수소 고리 버클을 끼웠다. 탄화수소에는 형광분자를 붙여 버클이 채워지면 빛을 냈다. 이제 눈으로 세포 표면의 당사슬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인체에 해로운 구리 촉매 없이 세포 안에서 클릭 화학을 구현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노벨 위원회는 “클릭 화학과 생물 직교 화학은 화학반응을 기능주의 시대로 이끌어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세 과학자의 연구는 새로운 항암제 개발로 이어졌다. 암세포 표면의 당사슬에 항체가 붙은 버클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버토지 교수는 수상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클릭 화학은 코로나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화학상 수상자 세 명은 상금 1000만크로나(약 13억원)를 3등분해 나눠 갖는다. 노벨상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온라인으로 대체됐지만 올해는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 기일에 맞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정상적으로 열린다. 2020년과 지난해 수상자 역시 올해 시상식에 참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