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색다른 여름 건강식을 찾는다면 ‘말미잘’을 추천한다. 입과 항문이 하나로 붙어 있는 하등동물 말미잘을 먹는다고? 그렇다. 부산 기장 학리항에 가면 말미잘을 파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학리항에서도 말미잘을 먹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미잘을 취재하러 찾아간 학리항 ‘해녀집’ 주인은 “우리 마을에선 30여 년 전부터 말미잘탕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 이 동네 한 어부의 아내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학리는 붕장어(아나고)로 이름난 지역이다. 붕장어 잡으려 던져둔 낚싯바늘에 말미잘이 심심찮게 딸려 올라왔단다. 처음에는 재수 없고 흉측해 버렸지만, 차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메기탕을 끓일 때 말미잘을 잘라 넣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고, 말미잘탕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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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고 흉측해서 어떻게 먹느냐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아귀찜의 주인공 아귀를 생각해보자. 아귀도 옛날에는 어부들이 “재수 없다”며 잡으면 물에 도로 던져 넣었다고 해서 ‘물텀벙’이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꼼장어’나 ‘곰장어’로 더 익숙한 먹장어는 눈이 퇴화해 피부에 흔적만 남아 있고 겉모습이 징그러운 데다 빨판처럼 생긴 입으로 물고기 살을 빨아 먹거나 죽은 바다동물 사체에 입을 붙여 영양분을 빨아 먹는 등 식습성이 혐오스럽다. 하지만 요즘은 없어서 못 먹는다. 국내산으로는 부족해서 미국, 브라질 등 전 세계 먹장어를 수입해 먹는다. 익숙해지면 못 먹을 건 없다.

말미잘은 몸에도 좋다. 말미잘을 많이 먹으면 입술과 혀가 살짝 얼얼한 느낌이 든다. 위험하거나 해로울 정도로 강하지 않은 독성을 소량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장 사람들은 이 독성 때문에 말미잘이 위장과 간에 좋단다. 기장의 한 식당 입구에는 ‘말미잘 십전대보탕’이라고 쓰여 있었다. 식당 주인은 “손님들이 말미잘의 효능이 ‘보약 한 재와 같다’며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최근 과학자들이 말미잘에게서 항균과 마취 효과가 있는 생리활성 물질 ‘크라시코린(Crassicorin)’을 발견했다. 피부 노화 예방과 미백 효과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맛도 괜찮다. 학리 일대 식당에서는 말미잘을 매운탕과 수육·구이 등 3가지로 요리한다. 매운탕과 구이를 맛봤다. 매운탕은 먼저 말미잘을 깨끗이 씻어 다듬은 후 붕장어 뼈 우린 육수에 양파·된장·고춧가루 등과 함께 넣는다. 그 후 센 불에 끓이다 송송 썬 파와 방아 잎까지 넣어 마무리한다. 국물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말미잘은 젤리처럼 말랑말랑 쫄깃하면서, 오독오독 씹히는 연골이 살짝 붙어있다. 소 힘줄(스지)과 비슷하지만 더 부드럽다. 연탄불에 겉이 노릇해지게 구운 말미잘 구이는 매운탕에 들어 있는 것보다 더 탱탱하면서 오징어처럼 구수한 맛이 났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말미잘을 먹는다.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있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르 프티 니스(Le Petit Nice)’ 대표 요리 중 하나가 말미잘 튀김이다. 우리가 말미잘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