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당시 문장가인 유한준 선생이 쓴 글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다소 변형시켜 인용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문화유산 탐방 붐이 일어났고, 문화유산을 관람하는 태도나 자세가 달라졌다.
이는 대구의 문화관광 자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이어 삼국시대 때 신라에 병합됐고, 조선시대 때인 1601년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대구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깃거리가 널려 있다. 그리고 대구는 음악과 미술, 문학에서도 근·현대를 이끌어 왔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곳이다. 특히 6·25전쟁이 터지자 대구로 피난온 많은 예술인들이 대구를 예술의 무대로 활동하면서 많은 흔적을 남겼다. 지금도 대구는 다양한 예술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고, 관광자원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중에서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관광 소재 중 하나가 건축물이다. 대구에는 그 역사만큼이나 조상들이 짓고 아끼고 보존해 왔던 건축물들이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다행히 대구는 목숨 걸고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많은 군장병들 덕분에 6·25의 전란을 피할 수 있어서 도시가 온전하게 보존되기도 했다.
흔히 그렇듯이 대구 건축물의 일부는 종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또 어떤 건축물은 찬란했던 당시의 화려함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건축물들은 그때의 치욕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대구시와 대구관광재단은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거나 스토리를 담은 건축물들을 패키지로 활용해 지난 10월15일부터 이달 12일까지 건축문화기행인 ‘나를 짓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구 건축물의 공간이 다양한 이야기 속에 오늘의 나를 투영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내면을 찾아가는 여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캠페인에 선정된 대구건축기행의 코스는 3가지다. 1900년대 서양 건축가와 동양의 현장 기술자들이 만들어 낸 대구 도심의 건축물을 걸어보는 ‘브릭로드’, 도시재생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건축물을 발견하는 ‘대구 르네상스’, 대구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고건축이 간직한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천년 대구’ 등이다. ‘천년 대구’는 동구편과 달성군편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그중 첫번째 코스인 ‘브릭로드’에서는 ‘대구에서 세계 건축물을 만나다’라는 취지를 담았다. 여기에는 화교협회를 비롯 계산성당, 의료선교박물관, 계성중학교, 성유스티노신학교, 성모당이 있다.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 동굴을 본떠서 만든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대구대교구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동굴 형태의 건축물 안에는 성모상이 자리해 있어 그 어느곳보다도 종교적 분위기가 충만해 있다. 코로나 시대에 치유를 위한 곳으로 이만한 장소도 드물다.
사적으로 지정된 계산성당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 한국의 3대 성당 중 하나로 1899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처음 건립됐지만 1901년 화재로 소실되자 1902년 프와넬 신부에 의해 다시 설계돼 지금의 건물이 됐다. 고딕양식 외관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은 인상적이다.
두번째 코스인 ‘대구 르네상스’에는 대구문학관, 대구근대역사관,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션, 복합스포츠타운, 빌리웍스, 대구삼성창조캠퍼스를 포함한다. 모두 기존에 있던 건축물을 외관은 그대로 둔채 리모델링을 해서 다른 용도로 활용한 사례다.
‘천년 대구’ 동구편에서는 옻골마을, 불로동고분군, 북지장사, 동화사를 아우른다.
옻골마을은 옻나무가 많이 자라나는 골짜기라 해서 붙은 이름. 조선시대 1616년 최동집이 들어와 정착해 살면서 이루어진 경주 최씨 집성촌이다. 입향조 최동집의 손자 최경향이 1694년에 지은 종택 백불고택은 옻골마을의 대표 건축물이자 조선조 가옥 중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여러 기와집들은 마을의 입지조건과 집터에 스며든 지혜, 고택 가옥의 구조와 당시 반가들의 생활양식, 내외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와서 더욱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천년 대구’ 달성군편에서는 육신사를 비롯 하목정, 디아크, 도동서원, 한훤당고택을 둘러볼 수 있다.
육신사는 달성군 하빈면에 있는 사당. 조선 세조 당시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박팽년, 성삼문 등 사육신의 위패를 모셔 충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 건축물의 배치 등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을이면 수령 400년된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이 많은 사진애호가들을 불러모은다.
이런 건축물 말고도 사연 있고 이름을 날리고 있는 건축물은 부지기수다. 선덕여왕의 원당(願堂)으로 알려졌으며 고려시대 때는 초조대장경을 보관해 왔던 부인사, 조선 왕실의 원당이자 영조의 탄생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를 간직한 파계사, 숙종의 친필과 5층 전탑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송림사와 같은 사찰의 이야기는 아라비안나이트 만큼이나 끊임없는 화수분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 선봉장이었다가 ‘명분없는 전쟁’이라며 조선에 투항한 모하당 김충선의 위패를 모신 녹동서원, 옛 서적의 보고로 꼽히는 인수문고를 비롯한 수봉정사·광거당이 있는 남평문씨본리세거지(달성군 화원읍), 경상감영이 있던 경상감영공원, 2000년 세월을 간직한 달성공원 등 이야기 보따리가 널려 있다.
그밖에도 서상돈 고택, 이상화 고택, 3·1만세운동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가객 김광석을 기리는 김광석길, 신숭겸장군 유적지 등도 대구의 ‘대구다움’을 전해주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