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발표한 토즈의 T Bike.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토즈와 이탈리아의 럭셔리 자전거 브랜드 콜나고(Colnago)가 협업했다. 탄소섬유로 설계됐으며 70개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토즈 제공

누군가에겐 취향이, 누군가에겐 삶이자 생계다.

지난달 7일부터 12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팬데믹으로 2년만에 오프라인으로 부활한 이 박람회는 전 세계 2000개 이상의 회사들이 참가해 최신 트렌드를 선보였다. 1961년 이탈리아의 국내 가구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디자인의 전시회로 성장했다. 루이비통·에르메스·펜디·랄프로렌 등 유명 패션 브랜드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대하면서 가구 박람회에 참여한 지 오래다.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와 이탈리안 고급 식기의 대명사 지노리가 협업해 선보인 테이블웨어 시리즈. 오프화이트의 로고가 전면 배치됐고 깔끔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오프화이트 제공
산업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디올과 손잡고 선보인 미스 디올 의자. 루이 16세 스타일의 상징과 같은 메달리온 의자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암레스트(팔을 편안하게 올려놓는 부분)가 없는 버전과 1개 및 2개의 암레스트를 갖춘 버전까지 총 3가지 모델로 올해 말 공식 출시된다./디올

이미 미술관을 비롯해 건축·실내 디자인·인테리어에서 F&B까지 섭렵한 명품 브랜드에서 가구 관련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프랑스 고급 브랜드 벨루티는 구두를 맞추러 온 고객을 위해 더 편리한 의자를 개발하다 가구를 선보이게 됐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랄프로렌 역시 ‘랄프로렌적인 삶’을 지향하며 마치 미국 뉴욕 상류층 별장이 모여있는 롱아일랜드주 햄튼 어느 곳에 와 있는 듯한 거실과 식탁을 연출한다.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선보인 랄프로렌 팔라쪼 컬렉션. 랄프로렌식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랄프로렌 제공

팬데믹으로 인해 인테리어 분야가 성장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재택’과 ‘집’이 중시 되면서 내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비움의 미학을 외치는 동안 누군가는 맥시멀리즘을 이야기한다. 결국 하나로 모아지는 주제. 이번 시즌 가구 박람회는 전 세계를 관통하는 지속가능한 삶이다.

공예를 강조하는 스페인 고급 브랜드 로에베가 이번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선보인 제품들. 한국의 지승기법을 이용해 소개하기도 했다. /로에베 제공

지난 6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로에베 공예상’을 개최한 스페인 고급 패션 브랜드 로에베는 다시한 번 공예를 통해 지속가능을 알렸다. 로에베는 창업자 후안 로에베 라테가 1846년 스페인에서 가죽 장인들과 공방을 차리면서 탄생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은 ‘1846년 당시 로에베 정신의 부활’을 내걸며 공예 기법을 접목한 의상을 대거 내놓기도 했다. 2016년 만들어진 ‘로에베 공예상’은 공동 공예 작업장으로 시작한 창업자 정신에 경의를 표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번 밀라노 박람회서 로에베는 ‘꼬고, 복원하고, 갱신한다’는 이름으로 버리지 않는 선순환을 그렸다. 한국 전통 지승(紙繩·종이를 비벼 꼬아서 만든 끈) 기법을 이용한 작품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국제적인 권위의 ‘로에베 공예상’에서 이번 최종 우승자로 한국 전통의 말총 공예 기법의 작품을 내놓은 정다혜 작가를 선정하기도 했다. 밀라노 박람회에 이어 이번 공예상까지 ‘한국 공예 기법’을 주목한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이으면서도 자연의 선순환을 강조하는 한국 공예는 로에베가 최근 추구하는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1일부터 한달 간 전시되는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결선 진출작. /로에베

조명으로 유명한 톰 딕슨은 지속가능성을 내세우는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에게 영감받아 균사체(mycelium) 모양으로 ‘20주년’ 기념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프화이트와 지노리의 협업이나 패션 브랜드 아쿠아주라가 새롭게 선보인 테이블 웨어, 스톤 아일랜드와 미소니 등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선보였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2018년부터 루카 구아다니노 스튜디오를 통해 조명과 가구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로부터 영감을 받은 거실 등을 선보이며 그 특유의 색감을 선사했다.

조명의 대가 톰 딕슨이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트웬티' 시리즈. 지속가능성의 대모(代母)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영감을 받아 균사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조명 시리즈를 선보였다. /톰딕슨 제공

세계적인 작가와 협업하는 루이비통 노마드 컬렉션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국내에서도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 일부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2012년 디자인 마이애미 기간 처음 공개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은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160년 넘게 이어온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컬렉션이다.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 /루이비통
지난 6월 서울 송은에서 전시됐던 루이비통 노마드 전시 전경. /루이비통 제공

2021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최초로 공개되고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오브제 노마드 신작도 대거 선보인다. 캄파냐 형제는 세 가지 강렬한 색감을 지녀 어떤 공간에 놓아도 경쾌한 생동감을 불어넣는 ‘메렝게(Merengue)’ 푸프(pouffe)를,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는 만개한 꽃을 닮은 유기적 구조의 ‘페탈 체어(Petal Chair)’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