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가들의 치열한 창작의 바탕에는 전통의 힘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도예가들은 그 중에서도 백자, 분청과 같은 옛 도자기를 주요 소재로 즐겨 사용하고 차용해왔다. 회화, 조각, 사진, 미디어 등 매체를 불문하고 특히 분청을 향한 우리 미술계의 관심은 뜨겁다.

오는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22 키아프 서울’ 특별전에 전시되는 허상욱 작가의 출품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국미술오천년전’과 같은 국외순회전이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조선분청사기전’ 등으로 우리 분청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해외 언론들은 칸딘스키와 앙리 마티스보다 무려 5세기나 앞선 조선 분청에서 현대미술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고 극찬하고, 잭슨 폴록과 샘 프란시스 같은 유명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에 준하는 현대성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회청색 흙으로 만든 그릇에 백토(白土)를 입힌 뒤 여러 기법으로 장식한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로 이어지던 사이에 나와 그 역사는 청자나 백자에 비해 짧다. 그러나 한국인의 소박한 정취와 자연관, 그리고 분방한 미감이 가장 오롯이 표현된 도자기라 할 수 있다. 흙과 유약의 상태, 불의 온도, 분장토 위에 거침 없이 그려낸 붓자국 하나까지 모두 작가 내면에 있던 심상이 우연처럼, 혹은 필연처럼 밖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 결과물이다.

이렇듯 한국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분청사기를 오는 9월 3일부터 6일까지 나흘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2022 키아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2022 키아프’를 맞아 전통을 기초로 하되 새로운 재료와 시도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치는 작가 7인의 작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전시감독은 올해 밀라노 한국공예전으로 국내외 언론에서 호평받은 강신재씨가 맡았다.

인화(印花·그림이나 꽃 등을 눌러 찍는 도자기 장식 기법), 상감(象嵌·겉면에 무늬를 파고 그 안에 다른 재료를 박아 넣는 기법)을 독자적 문양과 형태, 질감, 번조(燔造·그릇을 구워서 만들어내는 기법) 효과를 더해 회화로 발전시킨 김진규와 박래헌. 회색 바탕 도자기 위에 붓을 도구 삼아 현대 미술에 준하는 조형성과 감성을 공예 특유의 체화된 수법으로 시도한 이강효, 이수종, 최성재. 전통 도안을 스케치하듯 무심히 그린 후 바탕에 박지기법(剝地技法ㆍ도자기에 무늬를 그린 뒤 배경을 긁어내고 유약을 바르는 기법)을 더해 시원한 대비와 해학을 시도한 허상욱. 여러 가지 흙과 안료를 섞어 도자기의 형태를 제작한 후 화장토로 표면을 분장(粉粧)하고 가마에 굽는 소성(燒成)을 거듭해 남다른 물성 깊이와 추상의 세계를 도모한 박성욱. 일곱 작가의 대표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 분청의 표현과 기법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김태훈 원장은 “분청사기뿐 아니라 한국 공예품은 국내외에서 그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 이번 ‘2022 키아프’ 특별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분청 작가를 엄선해 미술시장에서 경쟁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면서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이 더해진 공간에서 우리 분청사기의 아름다움과 멋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의 (02)398-7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