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토 내해(內海)의 파도소리에 잠을 깬다. 나오시마를 덮고 있던 어둠이 걷힌다. 숙소인 베네세하우스를 둘러싼 야외 미술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지 않은 바닷가에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서 있다. 나오시마를 소개하는 책자에 빠짐없이 나오던 그 작품이다. 새벽 공기 마시며 숙소 주변 잔디밭과 모래사장을 걷는다. 니키 드 생팔의 원색 조각, 스기모토 히로시의 설치 ‘유리 다실(茶室) 몬드리안’, 댄 그레이엄의 설치 ‘평면에 의해 이분된 원통’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침 먹으러 테라스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호텔 라운지와 식당 가는 통로, 식당 벽에 걸려있는 것들이 모두 세계적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나오시마는 거대한 현대미술의 향연장이다.
조선일보사가 기획한 고품격 해외인문기행 시리즈 첫 순서인 ‘이주헌과 함께 하는 나오시마 미술기행’이 11월 7~11일 일본 카가와현(香川縣) 나오시마(直島)와 데시마(豊島) 일대에서 펼쳐졌다. 여행 주제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의 힘’―. 이주헌 미술평론가의 깊이있고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예술여행의 품격과 감동을 듬뿍 느낀 4박5일이었다.
여행 참가자는 22명. 부부와 자매, 모자(母子), 친구 등 구성도 다양했다. 일에 쫓기고 촌각을 아껴써야 하는 대기업 회장도 부부 함께 단체여행에 참가해 해방과 충전의 시간을 즐겼다. 평생을 교단에 바치고 은퇴한 선생님도 왔다. 노모를 모시고 온 쉰한살 기업인은 “어머니와 둘이 나오시마 오고픈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나오시마는 걸어서 20~30분이면 미술관 하나씩을 만나게 된다고 해 세계 최고의 미술 순례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섬 안 호텔 베네세하우스에서 숙박하며 나오시마를 돌아보는 것은 미술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 다카마쓰 부두에서 한참 배를 타고 가야하는 데다 숙소 예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주헌과 함께…’ 여행단은 베네세하우스에서 1박 하며 천천히 그리고 여유있게, 삶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의 힘을 음미했다. 베네세하우스의 객실에는 TV가 없었다.
찾아간 미술관이 9곳이었다. 여행단은 클로드 모네, 자코메티,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안도 다다오, 이우환,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로버트 라우센버그, 브루스 나우먼, 리처드 롱,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야니스 쿠넬리스, 장샤오강 등 거장(巨匠)들의 작품을 만났다. ‘지중(地中) 미술관’은 지하 전시공간에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시간 변화에 따라 작품과 공간의 분위기를 다르게 느끼게 했다. ‘데시마 미술관’ 바닥 바늘구멍들에서 솟아난 작은 물방울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흘러가는 모습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 또는 삶의 굽이굽이를 함축한 듯 해 보는 이를 숙연케 했다. 참가자 중에는 한참 동안 물방울 흐름을 지켜보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여행단은 늦가을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데시마 섬 다랑이논길 사이를 걸으며 자기도 모르게 힐링이 됐다. 때로 현대미술은 그 난해함으로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참가자들은 “이 작품은 주장하는 게 뭡니까?” 거침없이 물었고,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정성을 다해 설명해 주었다. 베네세하우스의 호사스런 프랑스식 만찬, 에도(江戶)시대 정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리츠린(栗林) 공원, 사누키우동의 본고장 고토히라의 노천온천은 미술기행의 주 메뉴는 아니었지만 그 맛과 품격으로 인해 여행의 덤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전세계 1000점의 걸작 미술품을 도판(陶板)에 재현한 오쓰카미술관에서는 학예부장이 직접 나와 여행단을 맞고 설명해 주었다. 참가자들은 지친 일상에서 낯선 곳으로 빠져나와 뭔가를 새로 얻고, 채워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주헌과 함께하는 나오시마 미술 기행’은 12월 5일 출발하는 2차 기행단도 모집이 마감됐다. 3차는 내년 3월 쯤 떠날 예정이다.
안내(02)318-4485,4401
/나오시마-데시마(일본 다카마쓰)=김태익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