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피낭시에 /푸도피 인스타그램 제공

설을 비롯한 명절에는 전통 한과가 빠질 수 없다. 한과 중에선 약과(藥果)를 유독 좋아한다. 손자를 유독 아꼈던 할머니가 슬쩍 건네주신 약과를 입에 넣으면, 달콤하고 진득하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바삭하고 향긋한, 맛있는 맛이란 맛은 모조리 모아 놓은 듯한 디저트의 결정체처럼 느껴졌다.

약과는 MZ세대 사이에서 마카롱, 에클레어 등 서양 디저트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는 한과이기도 하다. 유명 한과 전문점 약과의 경우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보다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초콜릿 브라우니처럼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따뜻하고 꾸덕해진 약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이거나, 와플 판에 누른 약과를 크럼블 과자처럼 먹기도 한다.

약과는 원조 한류 ‘K디저트’이기도 하다. 무려 90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 인기였다. 고려 충렬왕이 세자 결혼식에 참석하러 중국 원나라로 갔다. 원나라의 부마국이었던 고려 세자는 원 황실 공주와 결혼해 수도인 대도(大都·오늘날 베이징)에 살았다.

‘고려사(高麗史)’는 “충렬왕이 원나라에서 베푼 연회에 유밀과를 차렸더니 그 맛이 입술에서 살살 녹는 듯하여 평판이 대단하였다”고 전한다. 이때 유밀과가 바로 약과다. 이런 까닭으로 원나라에서는 약과를 ‘고려병(高麗餠)’이라고 불렀다. ‘고려 과자’란 뜻이다.

고려는 한과가 크게 발달했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에서는 고기와 생선을 제례에 올리지 않았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 가르침에 따라 육식을 절제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밀과가 발달해 연등회, 팔관회 등 불교 행사에는 반드시 약과를 고임상으로 쌓아 올렸다. 제사·차례상에는 고기 대신 짐승 모양을 본떠 만든 약과를 올리기도 했다.

약과는 ‘꿀을 이용해 과일 모양으로 만든 과자’란 뜻이다. 과거엔 꿀이 들어간 음식에 ‘약’을 흔히 붙였다. 조선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약과의 다른 이름인 ‘조과(造菓)’에 대해 “처음에는 약과를 과일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나 제사상에 올리기 어려우므로 넓적하게 끊어 자르기 시작하였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고 기록했다.

과거 약과는 궁 밖에서는 먹기는커녕 보기도 힘들었다. 밀가루, 꿀, 조청, 참기름, 술 등 약과 재료들이 엄청나게 귀하고 비쌌기 때문이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왜 밀가루가 비쌀까 의아할 수 있겠다. 당시 밀가루는 중국에서 대부분 들여오는 최고급 수입 식재료였다.

고려 말 공민왕 시절 이미 약과를 비롯 유밀과 제조를 국가에서 종종 금지했고, 조선 시대에는 흉년이 들거나 나라가 어지러울 땐 한동안 궁 밖에서는 만드는 것이 법으로 금지했다. ‘약과 금지령’은 태조·세종·세조·성종·연산군·중종·명종·숙종·영조·정조실록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금지 기간 약과를 만들다 적발되면 곤장 80대를 맞았다.

곤장 맞을 두려움 없이 약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 얼마나 다행인가. 대신 비만을 걱정해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