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연세대 의대 내과학교실 종양내과 교수)이 주도해 개발된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국내 1호 블록버스터 신약’ 탄생에 성큼 다가섰다. 글로벌 제약사 얀센이 렉라자에 대해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의 미래 표준”이라고 극찬할 정도이다.

이는 렉라자를 얀센의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 병용요법(임상명 ‘마리포사’)으로 투여했을 때, 단독요법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지난 20일(현지 시각)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유럽종양학회(ESMO) 학술대회에서 이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 1000여 명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에서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은 기존에 지배적이던 1차 치료제(타그리소)의 단독요법보다 질병 진행과 사망 위험을 30% 더 감소시켰다. 항암제 효능 평가의 핵심인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mPFS)이 23.7개월로 타그리소 단독요법의 16.6개월보다 약 7.1개월 길었다. 얀센은 올해 내 렉라자의 미국 내 허가 신청을 진행하고 2025년까지 허가를 받는다는 구상이다. 국내 첫 블록버스터 신약 상용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는 조 교수에게 이번 성과의 의미와, 그동안의 드라마틱했던 과정에 대해 들었다.

‘국내 1호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 개발의 주축이 된 조병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은 “약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며 남달랐던 개발 과정을 돌아봤다./연세암병원 폐암센터 제공

-폐암 전문가로서 폐암의 위험성과 특수성은.

“폐암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이 최고인 암이다. 1년에 전 세계에서 약 250만 명 정도가 폐암에 걸리고, 국내에선 2만5000명에서 3만 명 정도 발병한다. 폐암은 위암 등과 달리 아직 조기검진 방법이 없다. 10명 중 6명 정도가 진단받았을 때 이미 4기에 해당한다. 발병률뿐만 아니라 진단 당시의 위중도도 높아 사망률이 전 세계 1위인 것이다.”

-이번 유럽종양학회 발표를 통해 ‘렉라자’가 폐암 1차 치료제로서 ‘국내 최초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년 전 10%대였다면, 지금은 20%대 후반까지 올라왔다. 이는 그동안 개발된 다양한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들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개발된 약은 단 하나도 없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국산 항암제가 ‘전무(全無)’하다는 것이 팩트인 만큼, 한국은 여전히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불모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렉라자가 미국 내 허가는 물론 내년에는 보험 등재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발표 주제인 얀센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이 전 세계 환자들을 위한 1차 치료제로 렉라자가 미국 FDA 승인을 받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폐암의 한 아형(소분류)으로, 전체 폐암의 약 40% 정도를 차지하는 돌연변이 암 유형이다. 그만큼 환자 수가 많은데, 현재 이 병의 독보적인 1차 치료제이자 3세대 치료제로 유일하게 승인받은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가 이 분야를 독점해 왔다. 하지만 대다수 국가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에게는 불리했다. 평균 18개월 동안 한 달에 1000만원 정도의 약값이 든다. 경쟁은 가격을 낮추기 마련이므로, 환자들 입장에서 이 독점이 깨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예상컨대 렉라자와 리브리반트는 조만간 미국 FDA를 비롯해 전 세계 승인을 받을 것이다. 그럼 환자들에게 렉라자 단독요법·타그리소 단독요법·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3가지 옵션이 생기면서 치료비는 내려갈 것이다.”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도 희소식일 것 같은데.

“당연히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거듭 말하지만 렉라자는 미국 FDA 승인을 받는 우리나라 최초의 글로벌 혁신 신약이다. 바이오 분야는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산업이지만, 한국 제약사들은 지금까지 복제약을 주로 만들어왔다. 왜냐하면 신약 개발에는 정말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데,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주기란 쉽지 않다. 이번 성과는 글로벌 10위권 제약사가 하나도 없는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실제로 렉라자가 1차 치료제로 쓰이게 되면 창출할 경제적 수익도 상당히 크다.”

‘렉라자’ 개발에는 조병철 교수뿐 아니라 ‘퍼즐’처럼 엮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했다.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스태프들과 조병철 교수가 함께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 ‘렉라자’ 개발 과정 중 남다른 감회는.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 같기도 하겠지만 약이라는 게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렉라자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재벌가에 시집간 드라마 속 여주인공 같다. 렉라자는 얀센의 ‘왕자’ 리브리반트와 결혼하면서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리브리반트도 얀센에서 별로 대접을 못 받는 자식에 해당했는데, 렉라자를 만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저도 전혀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약 8년 전에 제가 ‘3세대 표적치료제의 내성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정부 과제에 지원했는데, 거기서는 떨어졌다. 그런데 그 과제의 마지막 심사를 맡았던 분이 유한양행 연구소에 계셨고, 그걸 계기로 렉라자의 전임상과 1상 임상을 시작하게 됐다. 다들 업계에 이미 너무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 이 약은 안 된다고 했지만, 저는 확신했다. 렉라자의 1상을 마칠 때쯤이었는데, 마침 아미반타맙(리브리반트의 성분명)도 우리 센터에서 1상 임상을 진행 중이었다. 연구자들이 다 아미반타맙에 관심이 없어, 전 세계에서 딱 두 군데가 1상 임상을 진행했다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센터였다. 그리고 제가 두 약의 전임상과 1상 임상을 다 담당하면서 얀센 사람들과 접하게 됐고, 두 약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결국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전임상·1상·3상 병용연구가 함께 성공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종양학 역사상 이렇게 운 좋게 잘 맞아떨어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정말 드라마틱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마치 퍼즐처럼 엮여서 값진 결과를 만들 수 있었기에 더욱 감사한 일이다.”

-렉라자의 실제 환자 치료 사례는.

“렉라자 단독요법 1상 임상을 진행하던 6~7년 전에 들어온 환자가 있었다. 가장 낮은 투여량으로 시작하게 된 첫 번째 환자였다. 4기 폐암으로 더 이상 치료법이 없었는데, 가장 낮은 용량에서도 반응을 보여 정말 기뻤다. 그런데 그 반응이 7년 정도 지나서도 유지되고 있고 당연히 그 환자는 생존해 있다. 또 렉라자는 여전히 보험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으면서 센터에서 ‘동정적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으로 약 70명 정도의 환자들을 지금까지 2개월 이상 ‘무상 치료’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앞서 언급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병용요법에 첫 환자가 등록된 지는 2년이 좀 넘었다. 많은 환자가 있었지만, 50여 명이 치료를 잘 받았다. 80대 고령이어서 본인과 가족 모두 거의 포기했던 환자도 2년 넘게 잘 치료되고 있다.”

◇조병철 교수 프로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연세의대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현재)

-연세의대 내과학교실 종양내과 교수(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현재)

-연세·유일한 폐암연구소 소장(현재)

-제5회 라이나 50+ 어워즈 생명존중상(2022년)

-제20회 보령 암 학술상(2021년)

-연세학술상(2021학년도 의생명 부문)

-제3회 연세대학교 용운의학대상(2021년)

*2023년 세계폐암학회는 ‘조병철 교수 폐암센터’를 아시아 최고의 다학제팀으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