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암 사망률 1위’는 폐암이다. 폐암은 2000년 이후 20년간 ‘불명예 1위’를 지키고 있다. 2017~2021년 통계에 따르면 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72.1%이다. 하지만 폐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전체 암의 절반 수준인 38.5%에 머물고 있다.
이렇듯 치명적인 폐암이지만 다양한 표적치료제 개발과 활발한 임상시험이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폐암 4기 진단 이후 6년간 치료받으며 건강하게 ‘장기 생존’ 중인 환자가 그 사례다.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형태·위치에 따라 크게 ‘비소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으로 구분된다. 이중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80~85%에 해당한다. 비소세포폐암 유전자 변이는 다양한데, 특히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돌연변이’는 피부나 점막표면(상피) 세포 유전자에 나타난다. 이는 아시아인 기준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40~55%에서 나타날 만큼 흔하다.
EGFR 변이에 대한 표적치료제는 현재 3세대까지 개발됐다. 기존에는 치료 옵션이 1개뿐이었지만, 국산 치료제 레이저티닙(시판명 ‘렉라자’·유한양행)까지 허가되면서 선택지가 2개로 늘었다. 2가지 치료제 모두 지난 1월 1일부터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돼 적극적으로 처방되고 있다.
2018년 레이저티닙이 상용화되기 이전 임상시험에 참여해 현재까지 치료받고 있는 이희대 환자(남·이하 ‘이’), 그리고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안병철 교수(이하 ‘안’)의 동반 인터뷰를 통해 폐암 치료 현황과 치료 과정 속 희망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폐암 진단 뒤 6년 동안 치료를 이어오신 이희대 환자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궁금합니다.
(이)”저는 1958년생 이희대라고 합니다. 2018년 7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레이저티닙’ 투여를 권고받고 유전자 검사 결과 ‘적합 판정’ 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처음 발병했을 때 상태 그대로입니다. 다른 곳에 암이 전이되지 않아 지금까지 진료는 받지만, 건강하게 생활하는 중입니다.”
―폐암 진단 당시 환자는 어떤 상태였나요? 폐암의 특별한 원인이 있었을까요?
(안)”심장 옆에 생긴 폐암 덩어리가 흉막 쪽으로 퍼져서 4기였지만, 다행히 다른 곳에 많이 퍼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4기이긴 하지만 예후가 나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 환자분이 진단받은 비소세포폐암의 ‘EGFR 돌연변이’는 아시아인에게 많은데,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흡연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다행히 당시 임상시험으로밖에 쓸 수 없던 ‘레이저티닙’ 치료에 참여하시게 됐고, 6년째 잘 치료되고 있습니다. 최근 또 다른 임상에 환자분을 등록시켜, 레이저티닙을 투여하면서 항암치료까지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환자분이 처음 폐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를 되돌아보시면.
(이) “건강검진에서 폐결핵 흔적이 있으니 CT를 찍어보라는 말에 놀랐습니다. 이후 국립암센터에서 정밀검사 한 결과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작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입원 전날까지 열심히 일했고 아무 증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폐암 4기가 위중한 병이긴 해도,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시한부’ 인생은 아니더군요. 저는 처음에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3~6개월 남았다는 줄 알고 그렇게 놀랐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환자에게 레이저티닙 임상시험을 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안)”EGFR 돌연변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요건은 없었습니다. 저는 레이저티닙 개발 단계에 다양하게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약에 대해 강력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해외 학회에서는 ‘기존 치료제에 밀려 어차피 실패할 것’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보란 듯이 임상 3상까지 거쳐 나왔을 때의 보람이 엄청났습니다. 레이저티닙 단독으로 썼을 때, 현재 환자들의 생존기간은 평균 3년 반~4년 정도 됩니다. 보통 폐암에 대해 ‘5년 생존율’이라는 말을 쓰는데, 과거에는 10년 이상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런 용어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희대 환자는 보시다시피 아주 건강하게 6년째 생활하고 계십니다. 이제 ‘10년 생존율’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환자가 6년간 의료진을 믿고 꾸준히 치료받은 결과입니다. 치료 과정이 무척 힘든데, 이희대 환자는 그걸 이겨내신 분입니다. 암환자 중에는 의료진 의견이 아닌 다른 ‘정보’에 흔들려 치료를 중단하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환자처럼 주변에서 치료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주신 경우 결과가 좋습니다.”
―이희대 환자가 6년간 꾸준히 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저는 종교로부터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만으로 암이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의료진 의견과 좋은 치료제를 적극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도 한때 ‘개 구충제’가 폐암에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구매할 정도로 솔깃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항암치료 받느니 개 구충제부터 먹어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당시 개 구충제를 드시던 분들이 하나둘씩 상태가 나빠지고, 결국 사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암환자들에게 검증 안 된 약이나 민간요법을 권하며 비싼 금액까지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개 구충제 사건 이후 저는 ‘절대적으로’ 담당 의료진에게 의지하기로 했고, 지금 이 순간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폐암 때문에 힘드신 분들, 또는 임상시험에 대해 주저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안)”의학의 힘과 암 치료 포함 ‘필수의료’의 가능성을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성공적인 암 치료로 환자의 수명 단축을 막고, 그분들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 암환자를 왜 치료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기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임상시험에 참여 의사가 있는 환자분들은 진행 중인 임상시험이 공개되는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보시거나, 종합병원 의료진을 통해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종양내과 분야가 최근에 크게 발전하면서 한국의 종양내과는 현재 세계 ‘선두주자’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의료진의 판단을 믿으시고, 치료 이면에 ‘혹시 다른 뜻이 있나’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수의료는 돈 벌고자 하는 분야가 아니라, 학문적이고 이상적인 욕심이 있는 분야입니다. 의료진을 믿고 잘 협조해 주신다면 종양내과 항암치료 분야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안병철 교수 프로필]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임상조교수(현)
-연세대 의과대학 석사 박사 수료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과 학사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분과 임상스텝전문의(전)
-주요 진료(연구 분야): 폐암·식도암·흉선암·중피종의 항암치료·신약임상·혈액을 통한 폐암진단·NGS(next generation sequencing·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