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는 영원히.’ 꽤 오래 통용됐던 광고 문구다. 오랫동안 다이아몬드는 이처럼 ‘변치 않는 영원함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천연 광물 중에서도 가장 단단하고 영롱하다는 원석. 여기에다 워낙 희소하다 보니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오랫동안 다이아몬드는 곧 ‘사치(luxury)’의 대명사였다.
요즘엔 얘기가 다르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광산을 빼앗기 위해 피 흘리며 다투거나 현지인들을 착취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천연의 다이아몬드보다 더 각광 받는 보석이 나와서다. 이른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랩 다이아몬드·Lab Grown Diamond)’다.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다이아몬드라고 하지만, 탄소를 고압고온에 노출시켜 만든 만큼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화학광학적으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전문가들조차 육안은 물론,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구별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와 비교할 때 보통 30%, 많게는 80%까지 저렴하다.
◇드비어스도, LVMH도 ‘인공 다이아’에 ‘올인’
시장이 달라지면서 전세계 1위 다이아몬드 기업이었던 ‘드비어스’는 이제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보다 ‘라이트박스’라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를 키우는데 더 열심이다. 드비어스는 이미 지난 2018년 9400만 달러 가량을 들여 연간 20만 캐럿의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생산기지를 구축해놓은 상태다.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하나가 라이트박스에선 800 달러 정도 한다. 드비어스의 천연 다이아몬드가 1캐럿에 6000달러를 웃돌았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가격이다.
2021년엔 또다른 전 세계 최대 보석 기업으로 유명한 덴마크의 ‘판도라’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브랜드인 ‘판도라 브릴리언스’를 내놓았다. 판도라는 또한 천연 다이아몬드는 더는 판매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인공 다이아몬드 시장에만 ‘올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크리스털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스와로브스키’도 랩그로운 다이아를 적용한 새로운 컬렉션, ‘스와로브스키 크리에이티드 다이아몬드 컬렉션’을 내놓았다.
미국 유명 업체 ‘브릴리언트어스’도 이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에 더 집중한다.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판매에 열을 올린 덕분에 재작년 매출은 전년대비 15.7%가 늘어났다.
명품업체들도 이쯤되니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 최대 명품업체 그룹으로 꼽히는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지난 2022년 이스라엘 랩그로운 다이아 기업 ‘루식스’에 9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한편, 자사 명품 시계 브랜드인 태그호이어에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박아넣은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프라다도 작년 10월 랩그로운 다이아를 적용한 ‘이터널 골드’ 시리즈를 선보였다.
시장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작년 80억달러(11조원) 정도. 2030년엔 499억달러(68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100%씩 성장하는 셈이다.
◇'지속 가능한 주얼리’에 열광하는 Z세대
전 세계 유명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업체들을 한데 모아 유통하는 플랫폼 회사도 등장했다. 글로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 플랫폼 회사 ‘더 퓨처락스(The Future Rocks이하 TFR)’다. ‘드비어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브랜드 ‘라이트박스’부터 전세계 각국의 디자이너 컬렉션을 모아놓은 플랫폼으로, 현재 13개국 21개 브랜드가 입점돼 있다.
이 업체의 창업자 앤소니 생(Tsang)과 레이 쳉(Cheng)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은 전기차 시장과도 비슷하다. 17년 전만 해도 모두가 테슬라를 비웃었지만 이젠 페라리마저도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 않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도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땅에서 캐내지 않으니 환경을 해칠 염려가 없고, 아프리카 약소국의 노동자들을 쥐어짜가면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특히 Z세대 소비자들이 열광한다.
실제로 다이아몬드 최대 소비국인 미국에선 최근 약혼반지에 쓰인 보석 원석의 50%가 이미 실험실에서 만들어진랩그로운 다이아몬드라는 통계도 있다. 유명 보석 전문 애널리스트 폴 짐니스키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 다이아몬드 쥬얼리 시장의 2%에 불과했던 합성 다이아몬드 판매는 2023년 18.4%가 됐다.
◇한국서도 “랩그로운”
국내에서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인기는 커지는 추세다. 이랜드그룹 주얼리테마파크 계열사 이월드가 운영하는 주얼리 브랜드 ‘로이드’는 최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제품을 300여종까지 늘렸다. 로이드 관계자는 “최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관련한 매출이 매년 50%씩 성장하고 있다”면서 “특히 7700만원짜리 7.76캐럿짜리 랩그로운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값비싼 제품을 덜컥 사가는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다”고 했다.
유통업체들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를 앞다퉈 속속 입점하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4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업체인 ‘어니스트 서울’의 팝업 스토어를 여는 한편, 라이브 방송도 진행했다. 롯데백화점도 잠실점과 부산본점에서 잇따라 ‘루미너스랩’과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롯데백화점 온라인 몰에도 국내 다이아몬드 전문 기업 KDT가 만든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 브랜드 ‘알로드’가 입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