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 가스전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하면 탄소 중립 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석유∙가스 생산으로 에너지 수입 비용을 연간 약 200조원 줄이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과 여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동해 심해 가스전, 에너지 전환의 토대

울산 남동쪽 58㎞ 지점에 있는 동해 가스전 생산 시설 모습. 2004년 7월 생산을 시작한 동해 가스전은 2021년 12월 31일 가스 공급을 끝으로 생산을 종료했다. 석유공사는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이 탈탄소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에 대해 “에너지 자원을 생산해 막대한 재원을 확보하면 ‘탄소중립’을 위한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한국석유공사 제공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보다 발전 단가가 상당히 비싼 만큼 가격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자칫 비용 부담이 국민이나 기업에 전가되면 물가 수준, 고용, 성장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석유∙가스 생산을 통해 자본을 확보하면 신재생에너지의 개발 비용 부담은 줄어든다. 일각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이 전 세계적인 탈(脫)탄소 흐름에 역행하고 탄소 중립 달성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화석연료 생산으로 확보한 막대한 재원은 신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또 생산이 종료된 석유∙가스 매장 공간을 CCS(이산화탄소 저장∙포집)를 위한 ‘이산화탄소 저장소’로 활용하면 탄소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앞서 우리나라는 미국∙EU(유럽연합)처럼 탄소 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로드맵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태양광∙수소 등 저탄소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 과제에만 2027년까지 약 90조원 규모 재정을 투입한다. 이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자원을 자주적으로 확보하고 자본력을 키워야 석유∙가스 외 다른 에너지원도 직접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도 화석연료로 재원부터 마련

해외 산유국 중에서도 석유∙가스 생산으로 재원을 마련해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활용한 사례가 있다.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는 석유∙가스 산업이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20%, 정부 수입의 31%를 차지할 만큼 경제의 핵심 축인데도, 화석연료 의존도와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석유∙가스로 부를 축적해 에너지 가격을 안정화하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웠다. 현재 노르웨이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은 전체의 95%에 달한다.

이스라엘도 가스전 개발 이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렸다. 2009∙2010년 대형 가스전을 발견한 후 2013년부터 약 10년간 자국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발전 연료로 사용해 전기요금을 안정화했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지난해 이스라엘의 태양광 발전량은 가스전 개발 이전인 2012년 대비 약 20배로 늘어났다.

현재 탄소 중립을 모범적으로 추진하는 국가들이 석유·가스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은 탄소 중립 실현의 주요 해법으로 작동할 수 있다. 최근 한국석유공사가 동해 심해 지역에서 찾은 7개 유망 구조에는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상당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석유∙가스 생산에 성공한다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석유, 가스, 석유 제품 수입에 지출한 1450억달러(약 200조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와 함께 조광료 등 각종 세수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국민 복지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이 균형 있게 고려돼야 정책의 지속성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