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 가스전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하면 탄소 중립 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석유∙가스 생산으로 에너지 수입 비용을 연간 약 200조원 줄이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과 여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동해 심해 가스전, 에너지 전환의 토대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보다 발전 단가가 상당히 비싼 만큼 가격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자칫 비용 부담이 국민이나 기업에 전가되면 물가 수준, 고용, 성장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석유∙가스 생산을 통해 자본을 확보하면 신재생에너지의 개발 비용 부담은 줄어든다. 일각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이 전 세계적인 탈(脫)탄소 흐름에 역행하고 탄소 중립 달성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화석연료 생산으로 확보한 막대한 재원은 신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또 생산이 종료된 석유∙가스 매장 공간을 CCS(이산화탄소 저장∙포집)를 위한 ‘이산화탄소 저장소’로 활용하면 탄소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앞서 우리나라는 미국∙EU(유럽연합)처럼 탄소 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로드맵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태양광∙수소 등 저탄소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 과제에만 2027년까지 약 90조원 규모 재정을 투입한다. 이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자원을 자주적으로 확보하고 자본력을 키워야 석유∙가스 외 다른 에너지원도 직접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도 화석연료로 재원부터 마련
해외 산유국 중에서도 석유∙가스 생산으로 재원을 마련해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활용한 사례가 있다.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는 석유∙가스 산업이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20%, 정부 수입의 31%를 차지할 만큼 경제의 핵심 축인데도, 화석연료 의존도와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석유∙가스로 부를 축적해 에너지 가격을 안정화하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웠다. 현재 노르웨이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은 전체의 95%에 달한다.
이스라엘도 가스전 개발 이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렸다. 2009∙2010년 대형 가스전을 발견한 후 2013년부터 약 10년간 자국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발전 연료로 사용해 전기요금을 안정화했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지난해 이스라엘의 태양광 발전량은 가스전 개발 이전인 2012년 대비 약 20배로 늘어났다.
현재 탄소 중립을 모범적으로 추진하는 국가들이 석유·가스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은 탄소 중립 실현의 주요 해법으로 작동할 수 있다. 최근 한국석유공사가 동해 심해 지역에서 찾은 7개 유망 구조에는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상당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석유∙가스 생산에 성공한다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석유, 가스, 석유 제품 수입에 지출한 1450억달러(약 200조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와 함께 조광료 등 각종 세수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국민 복지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이 균형 있게 고려돼야 정책의 지속성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