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황규석(92) 씨는 1970년대까지 고향인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북면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늘 영월을 그리워하며 고향 소식에 귀 기울여 왔는데, 어느 날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고향사랑기부제 광고를 보고는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첫해인 2023년, 아내와 함께 한달음에 고향을 찾은 황 씨는 1인당 연간 최대 한도인 500만원씩 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의 고향 사랑은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이번엔 사위와 함께 영월을 찾아 또 한 번 각각 500만원씩 1000만원을 기부하며 고향 발전에 일조했다.
경북 포항에서 살고 있는 엄석팔(71) 씨에게 고향 영월은 여전히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곳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알게 된 2023년은 마침 고향을 떠난 지 딱 50년 되던 해였다. 엄 씨는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무척 반가웠다”며 기부를 결심했다. 이후 매달 10만원씩 영월에 기부하며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엄 씨는 “매달 정해진 날 농협에 가서 기부금을 보내는 게 노년의 큰 낙이 됐다”고 말했다.
2023년 1월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를 지정해 기부할 수 있는 제도다. 이름에 ‘고향’이 붙었지만 꼭 태어난 곳에만 기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즐겨 찾는 여행지 △인연을 맺고 정든 곳 △응원하고 싶은 지역 등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제외한 전국 지자체 어디든 가능하다. 기부자는 고향 등 마음 가는 지역에 후원하며 정을 나누고, 지자체는 늘어난 재정을 취약 계층 지원과 문화·예술·보건 증진 등에 쓸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지방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제를 △열악한 재정 확충 △지역 경제 활성화 △생활 인구 유입의 열쇠로 삼아 홍보와 확산에 나서고 있다.
◇2년간 5억3630만원 모금
영월군은 시행 첫해인 2023년 2013건, 2024년 총 2130건의 고향사랑기부가 이어졌다. 모금액은 2년간 5억3630만원에 달한다. 그렇게 모인 정성은 지역 사회의 취약 계층 지원 사업에 고루 쓰였다. 여성이 혼자 운영하는 점포에 △CCTV △비상벨 △긴급 출동 서비스가 제공됐다. 장애인 자립을 위한 쿠킹 클래스 운영 시설도 마련됐다. 중증 장애인의 건강 검진을 위한 동행 및 이동 지원 서비스도 고향사랑기부로 마련된 기금으로 운영됐다.
오래전 낙상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영월 주민 한도영 씨는 지난해 5년 만에 건강 검진을 받았다. 영월군의 고향사랑기부금 기금 사업 중 하나인 ‘건강 동행 장애인 건강 검진 지원’ 덕분이다. 한 씨는 “보건소 직원이 동행해 줘 안심됐고 의료원에서도 대기 시간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어 피로감이 덜했다”며 “영월을 사랑하는 기부자들 덕분에 이런 혜택을 받게 돼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10만원 기부하면, 10만원 세액 공제+3만원어치 답례품
고향사랑기부는 연간 100원부터 2000만원까지 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 500만원이었던 연간 최대 기부액은 올해부터 2000만원까지로 크게 늘었다. 기부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풍성하다. 기부액 10만원까지는 전액, 10만원 이상은 16.5% 세액 공제된다. 세제 혜택에 더불어 기부금의 30% 한도 내에서 지자체가 마련한 답례품도 받는다. 10만원을 기부한다면 10만원 세액 공제에 3만원어치 답례품까지, 사실상 13만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영월군은 △우수한 품질의 지역 농·축산물 △가공식품 △생활용품 △관광 서비스 △지역 화폐 등 110여 종의 답례품을 마련했다. 지난해에만 1688건, 6000만원가량의 답례품이 제공됐다. 답례품을 생산하는 지역 농가와 기업의 소득에 보탬이 됐으며, 기부자 만족도도 높아 서로에게 ‘윈윈(Win-Win)’이었다.
기부는 고향사랑기부제 공식 포털 ‘고향사랑e음(ilovegohyang.go.kr)’ 또는 전국 5900여 개 NH농협 창구에서 할 수 있다. 영월군 관계자는 “영월을 사랑하는 기부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군민과 기부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금 사업을 지속 발굴하고 보내주신 정성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