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소재 기술 개발’ 선도기관인 한국재료연구원은 다양한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해 국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사진은 저온합성 브롬화구리막 기반의 고유연·고감도 암모니아 센서. /한국재료연구원 제공

우리나라는 1960년 이후 6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를 이뤄내며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는 팔로업(Follow-up) 기술을 바탕으로 완성품 중심의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한 덕분이다.

그러나 모방 중심의 추격형 발전 전략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중국의 거센 도전과 선진국의 보호무역 강화로 우리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본질은 독자적인 원천 기술, 특히 최종 제품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소재 기술’의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소재·부품·장비 사태’에서 보듯 일부 핵심 소재의 공급이 차단될 경우 반도체·이차전지·미래자동차 산업 등이 일시에 멈춰설 수 있다. 반도체·이차전지·우주항공·원자력 산업 등 첨단 분야의 성장을 위해서도 소재 경쟁력은 필수적이라는 전문가들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첨단 핵심 소재는 전략 품목으로 분류되고 있다. 각국은 이들 소재의 공급망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행보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 Science Act)’을 통해 약 2800억 달러를 첨단 기술 연구와 반도체 제조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소재 기술을 포함한 인프라 강화에 집중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친환경 제조 기술로 첨단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차세대 전지·우주항공·수소에너지 분야에서 미래 핵심 소재 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또한 주목할 만하다. 2015년 수립한 산업 고도화 전략 ‘중국제조 2025’는 과거 양적 성장 중심의 제조 강국에서 벗어나 질적 경쟁력 중심의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전략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소재 산업은 디스플레이·자동차·이차전지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소재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반도체·이차전지·우주항공·바이오 등 12개 국가 전략기술 분야를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약 5조원 규모의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해 핵심 소재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와 발맞춰 한국재료연구원도 ‘첨단 소재 기술 개발’ 선도 기관으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항공·국방·원자력 산업에 필수적인 극한 소재 △미래 모빌리티 실현을 위한 경량 소재 △수소 및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에너지·환경 소재 △질병 조기 진단에 활용되는 바이오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해 국가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초경량 알루미늄 합금 △초고온 우주항공용 소재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용 극저온 소재 △소형모듈원자로(SMR)용 원자력 소재 △미래형 바이오·헬스 소재 등은 국내 산업의 기술 자립을 이끄는 한편,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견인차 역할도 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첨단 소재 기술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GII)도 첨단 소재 시장 규모가 2030년 약 16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소재 기술 확보에 나서는 지금, 우리 역시 이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략적인 준비와 대응이 절실하다.

최철진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소재가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으로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통해 미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술 자립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진정한 소재 강국으로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