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1m88 큰 키에서 내리꽂는 각도큰 직구, 미소띤 표정과 여유, 시원시원한 투구패턴, 구석구석 찔러넣는 제구력까지.

2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SSG와 롯데의 경기. 1회를 무실점으로 마친 롯데 선발 데이비슨.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3.25

롯데 자이언츠 터커 데이비슨이 KBO리그 데뷔전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데이비슨은 2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주중시리즈 1차전에 선발등판, 7이닝 동안 3피안타 2볼넷 1실점으로 SSG 타선을 압도했다.

2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SSG와 롯데의 경기. 선발 투구하고 있는 롯데 데이비슨.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3.25

아쉽게도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이날 롯데는 연장 11회 혈투 끝에 3대2로 승리했다.

2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SSG와 롯데의 경기. 6회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 내려오는 롯데 데이비슨.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3.25

무엇보다 개막시리즈 2연패의 울분에 가득 찼던 김태형 감독을 웃게 한 호투였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김태균 해설위원은 “피지컬이 좋은데다 릴리스포인트가 워낙 높다보니 공이 나오는 궤적이 상당히 좋다. 저 높이에서 150㎞ 직구부터 다양한 변화구까지 나오니 타자 입장에서 상대하기 어렵다”며 혀를 내둘렀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ABS(자동볼판정시스템)의 낮아진 존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제구력도 인상적이었다. 최고 148㎞ 직구(18개), 140㎞를 상회하는 슬라이더(44개)에 포크볼(15개) 스위퍼(8개) 커브(4개)로 이어지는 느린 변화구 조합이 절묘했다. 커브와 포크볼이 타자들의 시선을 흔들었고, 잠시 긴장이 느슨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빠른공이 꽂혔다.

1회초 롯데가 먼저 선취점을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1사 후 고승민이 볼넷으로 출루했고, 나승엽의 2루타로 만들어진 1사 2,3루에서 레이예스의 내야땅볼 때 고승민이 홈을 밟았다.

데이비슨은 1회말 첫 타자 최지훈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다음타자 정준재의 투수 땅볼을 유도해냈다. 이후 1루 견제가 빠지는 실책이 있었지만, 박성한을 삼진, 에레디아를 우익수 뜬공처리하며 첫 이닝을 마쳤다.

마운드에 적응한 데이비슨은 2회 3자범퇴로 기세를 올렸다. 최고 148㎞ 직구에 슬라이더와 포크를 섞어 던지며 오태곤 이지영을 땅볼, 고명준을 삼진으로 순식간에 돌려세웠다.

3회에는 아차 하는 순간 한방을 허용했다. 1사 후 하재훈을 상대로도 볼카운트 0B2S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직구만 잔뜩 노리고 있던 하재훈은 한복판으로 쏠린 148㎞ 직구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잡아당겼고, 그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동점포로 이어졌다.

하지만 데이비슨의 에너지는 한층 더 강해졌다. 최지훈의 안타로 1사 1루가 된 상황. 정준재의 기습번트가 투수 앞쪽으로 떴다. 이때 데이비슨은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들어 온몸을 던진 다이빙캐치, 깔끔하게 잡아냈다. 자칫 3루수 손호영, 포수 정보근과 동선이 겹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마이 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유독 투수 쪽으로 향하는 타구가 많았던 이날, 민첩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제5의 내야수’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였다.

4~5회는 모두 3자범퇴, 6회에는 박성한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큰 위기 없이 넘겼다. 7회에도 선두타자 오태곤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희생번트와 폭투로 2사 3루가 됐지만, 앞서 홈런을 허용했던 하재훈을 상대로 망설임없는 승부로 3루 땅볼을 유도, 이닝을 끝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경기 진행 속도였다. 5회까지 데이비슨의 투구수는 56개에 불과했다. 6~7회 다소 투구수가 늘어났지만, 그래도 89개로 7회를 마쳤다. 7회말을 끝났을 때 경기 시간은 1시간49분에 불과했다.

오른손타자의 몸쪽을 대각선으로 찌르는 변화구가 강렬했다.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아가며 능동적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김태균 해설위원은 “직구와 슬라이더가 거의 동일한 위치에서 나온다. 피치터널이 굉장히 잘돼있다. 또 다양한 변화구도 갖췄는데, 빠른공 느린 변화구 섞어가는 레퍼토리가 굉장히 좋다. 피칭디자인이 워낙 잘돼있어 타자 입장에선 굉장히 위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감탄했다.

이어 “오늘 첫 경기인데, 이 정도면 올해 투수 수비상을 받아도 될 것 같다. 번트 수비, 강습 타구 대처, 뜬공 처리 모두 잘한다”며 연신 혀를 내둘렀다.

경기 후 데이비슨은 “지난 주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늘 승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휴식일인 어제 상대팀의 타자 공략법을 포수와 함께 분석을 했던 것이 첫 등판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어 “‘아웃 카운트를 늘이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슬라이더와 포크볼이 경기 운영에 좋은 역할을 했고, 투구수 조절에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오늘은 시즌의 첫 등판에 불과하다. 앞으로 꾸준히 노력해 KBO리그에 적응하고,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인천=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