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K는 지난 2일 부산 KCC와 벌인 프로 농구 홈경기 후 KBL(한국농구연맹)에 심판 설명회를 요청했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 탓에 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다. 72-72 동점이었던 4쿼터 종료 1초 전 KCC 알리제 드숀 존슨이 슈팅을 시도하다 쓰러졌다. 이 순간 휘슬이 울렸다. 심판은 수비를 하던 SK 안영준의 반칙을 선언했다. 존슨은 자유투 2개를 모두 넣었고, 결국 74대72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런데 중계 화면을 보면 안영준은 존슨과 부딪히지 않았다. 존슨은 안영준을 피한 뒤 SK 자밀 워니에게 슛 블록을 당했다. 워니 플레이도 파울이 아니었다. SK로선 연장전을 할 기회를 놓치고 억울하게 진 셈이었다.
SK 전희철 감독은 4일 KBL센터에서 열린 심판 설명회에 참석했다. KBL은 오심(誤審)이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잘못된 판정 탓에 피해가 생기더라도 경기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KBL은 오심을 한 심판을 자체 징계하는 경우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지난 5일에도 삼성 요청으로 심판 설명회가 열려 KBL이 또다시 오심을 인정했다. 공교롭게 오심 수혜자는 또 KCC였다.
여자 프로 농구에서 같은 플레이가 일어났더라면 어땠을까.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비디오 판독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파울 챌린지’ 규정을 신설했다. 감독들이 4쿼터에 한해 자기 팀 선수에게 반칙이 선언됐을 경우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제도다. 휘슬을 분 심판을 제외한 나머지 심판 두 명이 현장에서 영상을 확인한 뒤 오심이면 판정을 번복한다. 이 ‘파울 챌린지’는 연장전에 들어갈 때마다 한 번씩 더 사용할 수 있다. FIBA(국제농구연맹)에 없는 로컬 룰이며, NBA(미 프로 농구)의 ‘코치 챌린지’에 포함된 부분과 비슷하다.
KBL은 FIBA의 비디오 판독 제도인 ‘IRS(인스턴트 리플레이 시스템)’를 준용하고 있다. 심판은 경기 중 필요에 따라 터치 아웃, 골 텐딩(혹은 바스켓 인터피어런스), 버저 비터, U-파울(Unsportmanlike·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반칙) 여부 확인 등에 대한 판독을 한다. 감독도 1회에 한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이 심판에게 “반칙 판정을 다시 들여다봐 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다.
KBL도 WKBL이나 NBA에서 시행 중인 ‘파울 챌린지’를 추진했다. 문경은 경기본부장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10구단에 제안했는데, 반대가 많아 무산됐다”고 말했다. 10팀 감독들 중에선 8명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고 한다. NBA에서는 감독이 챌린지를 하려면 작전타임을 한 차례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A 구단 관계자는 “KBL이 시즌이 임박한 시점에 NBA식 챌린지 얘기를 꺼내 당황스러웠다. 사무국장 회의에선 ‘경기장 내 카메라를 더 설치하는 등 준비를 충분히 하고 나서 도입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스포츠는 종목을 불문하고 비디오 판독 범위를 넓혀가는 추세다. 프로 축구 K리그1에서는 2017년부터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을 도입했고, KBO(한국야구위원회)는 2017년 비디오 챌린지에 이어 내년에는 MLB(미 프로 야구)보다 먼저 자동 볼 판정 시스템까지 운용한다. 팬들의 눈높이에 맞춰 판정의 일관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KBL은 이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구단들과 비디오 판독 확대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WKBL 사무국은 “파울 챌린지를 시행한 뒤 구단들 심판 설명회 요청이 거의 없어졌다”고 밝혔다. WKBL 아산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은 “파울 챌린지는 도움이 된다. KBL도 구단들과 합의만 이끌어내면 이번 시즌 중이라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