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뉴시스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산하 기구인 전력강화위원회에서 후보군을 정한다. 최종 후보군을 5명 정도로 추려서 심층면접을 통해 전술, 대표팀 운영 방안, 계약 기간 등을 상세하게 조정한 뒤 축구협회장의 승인을 받는 절차다. 하지만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 전 감독을 선임할 때는 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클린스만이 절차를 밟기 전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직접 제안했고, 정 회장이 관심이 있다고 화답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매체 슈피겔은 지난달 21일 클린스만 감독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기자가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캘리포니아 클린스만 자택, 한국 대표팀 평가전 경기장 등에서 그를 만나 쓴 심층 기사다. 클린스만 감독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지난 16일 경질됐다.

클린스만은 정몽규 회장과 2017년 처음 만났다고 했다. 클린스만은 아들이 2017년 한국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였다. 그리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 또는 준결승전 중 한 경기 VIP 구역에서 정 회장을 다시 만났다. 한국이 16강전에서 진 뒤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 감독의 사임을 발표했을 때였다.

당시 클린스만은 ‘몽규, 만나서 반가워요. 코치를 찾고 계시죠?’라고 장난삼아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 회장이 돌처럼 굳더니 ‘진심이세요?’라고 되물었다. 둘은 그 다음날 도하 한 호텔 카페에서 약속을 잡아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에서 클린스만은 ‘몽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그냥 말했던 겁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면 또 연락을 주세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몇 주 뒤 정 회장은 클린스만에게 직접 전화해 ‘우리는 매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클린스만은 “농담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 관련 발표를 하기 위해 축구회관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이는 정몽규 회장이 지난 16일 해명했던 것과 배치된다. 당시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여러가지 오해가 있다”면서 “전임 벤투 감독 선임 때와 같은 프로세스”라고 밝혔다. 이어 “61명에서 23명으로 좁힌 뒤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이 5명을 인터뷰했다. 이후 1~2위와 2차 면접을 진행한 뒤 클린스만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력강화위원회가 감독 선임 절차를 밟기 시작한 건 지난해 1월 11일로, 카타르 월드컵 종료일(12월 18일)로부터 한참 뒤다. 감독 선임 절차를 밟기 전부터 정몽규 회장과 클린스만은 서로 한국 감독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다.

클린스만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서울을 떠나기 전 정몽규 회장이 열었던 만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당시 클린스만은 선수단 환송 만찬에서 “만약 우리가 아시안컵에서 우승한다면 축하 행사를 열 준비가 됐나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하지만 클린스만호는 거듭된 졸전 끝에 준결승전에서 한 수 아래인 요르단에 0대2로 패배하면서 짐을 쌌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의 ‘노래방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노래방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건 분명히 한국인들의 약점”이라며 “한국 생활 팁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즉시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