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이번 임기 과제에 대해 “디비전 시스템과 천안 축구센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리더를 발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지난 2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85.7% 압도적 득표율로 4선에 성공한 정몽규(63) HDC(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 최근 서울 종로구 포니정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가족과 해외여행 한 번 함께 못 갔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축구에 바친 만큼 마무리를 잘 짓고 싶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9일 55대 집행부 구성도 마쳤다. 2002 한일 월드컵 멤버인 현영민(46) 해설위원을 각급 대표팀 감독을 뽑는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에 임명했다. 역대 최연소 강화위원장이다. 대전 코레일에서 35년 동안 선수와 지도자로 몸담은 김승희(57) 감독에게 협회 행정을 총괄하는 전무 이사직을 맡겼고, 이정효(50) 광주FC 감독은 신임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프로축구) 디비전 시스템과 천안 축구센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점을 두는 건 다음 세대를 위한 리더를 발굴하는 일이다. 좋은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싶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이번 임기 과제에 대해 “디비전 시스템과 천안 축구종합센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리더를 발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숱한 비판과 가족 반대까지 무릅쓰고 4선에 도전한 이유는.

“국회 출석과 문체부 감사, 언론 비판 등 큰 부담 속에서 사실 물러나는 게 훨씬 더 쉬운 선택이었다. 정부나 국회에 맞서게 돼 사업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주위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10년 후 돌아봤을 때 ‘왜 그렇게 마무리했을까’라며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12년 동안 다 잘한 건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해왔고 성과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평가가 언론에 비친 대로 끝나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다. 다시 한번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어 출마를 결심했다.”

―당선은 됐지만 외부 시선은 곱지 않다.

“그동안 축구협회를 운영하면서 성격이나 철학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본래 남 앞에 나서거나 잘하는 일을 자랑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알려지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정보의 흐름이 더 빨라지고 여론의 흐름과 반응이 즉각적인 시대에 이렇게까지 오해가 커질 수 있구나 많이 배웠다. 선거 과정에서 하도 말이 많아 직접 설명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 소통위원회(위원장 위원석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를 새로 만들었다. 소통을 강화하자는 차원이다.

이번에 트럼프 정부 보니까 26살짜리 대변인이 따박따박 순발력 있게 잘 설명하더라. 지금 시대에는 바로바로 설명하고 동영상이건 유튜브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임기인데 그동안 잘한 것과 못한 것을 하나씩 꼽자면.

“디비전 시스템(K리그 1~7부 리그)을 기획하고 하나하나 만들어온 과정에 큰 보람을 느낀다. 한국 축구 미래 성장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자부한다. 부족했던 건 역시 소통이었다. 큰 결정을 하기 전에 충분히 팬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했는데 소홀했다.

노력을 덜 했으니까 이렇게 시끄럽게 됐을 거 아니겠나. 선거 과정에서 축구인들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설득하면 다들 이해하는구나... 그전에는 언론 탓도 많이 했는데 좀 노력이 부족했구나 느꼈다. 회사(현대산업개발)건 축구건 지난 2~3년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많이 배웠다.”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대표팀 감독을 뽑는 걸 신입 사원 공채처럼 한없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업이 필요한 CEO를 협상을 통해 모셔 오는 셈인 건데 모든 사람 눈높이에 어떻게 맞추나. 다른 나라도 대표팀 감독을 뽑을 때 절차적 공정성만 강조하지 않는다. 변수가 많고 물밑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물론 축구 팬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더 세심하게 노력하지 못했다는 건 반성한다.

벤투 감독만 해도 본인이 4년 계약 아니면 안 하겠다고 고집해서 결국 합의를 못 했다. 벤투도 아마 아시안컵 우승 못 했으면 다들 교체하라고 그랬을 거다. 월드컵 16강 달성이란 성과를 냈지만 그런 건 다음 날이면 다 잊는다. 황선홍 감독도 아시안게임 금메달 따서 선수들 병역 문제도 해결해주고 영웅이 됐는데 올림픽 못 나가니 한순간 역적이 된 거 아닌가.”

26일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회관에서 제 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열렸다. 4선 연임에 성공한 정몽규 회장. 신문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2.26

―‘고려대 마피아’라는 비난도 있었다.

“(나를 포함해)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과 이임생 기술이사, 홍명보 감독이 모두 고려대 동문이라 그런 얘기가 나왔나 본데, 실제 정 위원장은 나와 의견이 달랐다. 이임생은 사실 고대 출신이라고 인식하질 못했다. 당시 정 위원장은 홍 감독을 1순위로 추천했고 나는 외국인 감독 후보들을 더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홍 감독을 시키고 싶었는데 생각이 안 맞는다고 사표를 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한통속이라고 믿는 듯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전에는 이천수나 차두리처럼 고대 출신 선수들이 많았다. 국가대표 안에도 고대 비중이 상당히 커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앞으로는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 대학도 잘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런 편견은 없어질 걸로 본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사적 인연이 있다는 뒷말도 나왔다.

“차두리가 소개해 줘 인사한 적은 있다. 지나가면서 한 거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떤 인사(人事)든 마지막까지 의견을 안 내고 아끼는 성격이다. (회장) 의견을 먼저 얘기하면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클린스만 역시 마찬가지다. 클린스만을 뽑자고 먼저 의견을 낸 적은 없다.”

―국가대표 축구 감독은 어떤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보나.

“전 세계 축구협회장들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협회장 성과는 결국 대회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국민 감정과 직결되는 스포츠라 더욱 그렇다. 다만 (축구) 선진국들은 감독을 뽑고 계약 기간을 되도록 지키려 한다. 우리 축구 팬들은 바꾸라는 요구를 너무 자주 한다. 감독을 새로 뽑을 때 제일 중요한 건 우리 대표팀에 지금 문제가 뭐고 가장 필요한 게 뭐냐 그걸 먼저 정리하고, 그다음에 외국인 감독이 적합하냐 한국인 감독이 맞냐 결정해야 한다. 돈(연봉)은 또 그다음 순위다.

일단 뽑고 난 뒤론 어떤 감독이 가장 좋은 감독이냐 물어보면 지금 대표팀 감독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뽑아놓고 그 감독을 험담하는 건 (적어도 재임 기간엔) 적절치 않다.”

―경기장 잔디 문제가 계속 논란이다.

“잔디는 축구 선수에겐 배우의 무대와 같은데 여전히 우리는 ‘잔디는 파랗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FC서울 린가드가 ‘(잔디가 안 좋다 보니) 공이 어떻게 튈지 몰라 힘들다’고 푸념한 게 너무 부끄러웠다. 천안 축구종합센터 그라운드에 품종, 잔디 배합 등을 두고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한국형 잔디를 구축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잔디 관리 주체를 (지자체가 아니라) 구단이 맡아서 해야 한다고 본다.”

9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 질의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왼쪽)과 홍명보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증인으로 출석해 있다.

―학교 체육이 위기라는 말이 많다.

“교육부나 학교 현장은 운동을 자꾸 가욋일로 보고, 학교 밖(과외)으로 내보내려 한다. 일본은 초등학교에만 축구팀이 8000개 있지만, 한국은 초중고를 합쳐도 1000개가 안 된다. 더구나 아이들이 사교육을 통해 축구를 배우다 보니 비용도 일본보다 5~10배 더 들어 여러모로 안 좋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충분한 체육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유승민 체육회장도 공감대를 갖고 있다. 축구뿐 아니라 운동이 갖는 교육적 효능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국가)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게 노력할 계획이다.”

―협회를 위해 ‘사재 출연’을 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 회장이 경영하는)HDC(현대산업개발)가 대우 로얄즈를 2000년 인수해 지금까지 2000억원 이상을 썼다. 현대 전체로 보면 매년 1000억원 이상을 축구에 투자하고 있다. 이걸 회장 개인의 관심과 시혜로 해석하면 안 될 뿐더러 회장의 개인 기부가 당연하다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기업 차원의 공헌이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직 축구협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문체부 감사는 개인적으로 협회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내심 반가웠다. 금전적인 비리는 거의 없었다고 자부한다. 다만 정부와 민간 체육 단체 운영 기준 사이에 시각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사무실 위치가 어떻다’ ‘규정 적용이 이렇다’는 등 행정적 오류에 대해선 정부 눈높이에 맞춰 개선해 나가겠다.”

―2031 아시안컵 유치 가능성 얼마나 되나.

“지난 아시안컵은 카타르, 2027 아시안컵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다. 최근엔 2031 아시안컵 유치에 UAE(아랍에미리트)가 뛰어들었다. 중동에서 계속 열려 이번엔 동아시아 차례란 설득력이 있지만, 결국 AFC(아시아축구연맹)는 재정적 기여, 즉 돈을 얼마나 낼 수 있느냐를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 중동은 왕정 국가라 정부가 결정하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구조다. 현실적으로 아시안컵 유치를 위해선 국가 차원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