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제38회 ‘신한동해오픈(총상금 14억원·우승상금 2억5200만원)’ 1라운드가 열린 일본의 나라현 고마컨트리클럽(파71). 일본에 있는 골프장인데 입구에 경주 불국사에서 보던 다보탑이 서있다. 코스 그늘집은 한국 전통의 팔각정 스타일로 지었다. 클럽 하우스 대표메뉴는 곰탕, 불고기, 냉면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한국 스타일 골프장이다. ‘낚시꾼 스윙’으로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도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최호성은 “여기서 라운드를 하면 일본인데도 꼭 한국 같아요. 오히려 미국 골프장 닮아가는 한국 골프장보다 더 옛날 한국 골프장 같은 느낌도 들어요. 코스 관리 상태는 일본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반에 타수를 잃었다가 3언더파로 마쳤다”며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타수를 줄여보겠다”며 캐디를 맡은 아내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1981년 재일동포들이 모국의 골프 발전을 돕겠다며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신한동해오픈은 지난 2019년 대회 국제화를 위해 코리안투어(KPGA), 아시안투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3개 투어 공동 주관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영향으로 최근 2년간 KPGA가 단독 주관해 국내에서 개최하다 확산세가 진정되고 일본 입국 절차가 완화되면서 올해 다시 3개 투어가 공동 주관하게 됐다.
신한동해오픈은 2020년 골프장 개장 40주년을 맞아 이 곳에서 대회를 열려고 했는데 2년 뒤 뜻을 이뤘다. 고마컨트리클럽(파71)은 식민지 시대를 거쳐 일본에서 사업을 일군 재일동포 1~2세대의 애환과 모국에 대한 그리움, 사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히라카와 코포레이션(平川商社)의 오너인 재일동포 히라카와 하루키는 “고마 골프장은 나라, 미에, 교토 등 3개 현에 걸쳐 있는데 근처에 고려인 정착촌이 있어 한국의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2013년 발간된 『아름다운 일본의 골프코스』는 “고마를 한자로 쓰면 고려이며 1000여 년 전 고구려 패망 후 도래인들이 정착한 지역이다”라고 소개했다. ‘일본서기’에는 7세기 중반 표류한 고구려인들이 일본의 교토 남부에 정착해 ‘가미고코마무라(上高(句)麗村)’와 ‘시모고마무라(下高(句)麗村)’라는 마을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남아공의 골프 레전드 게리 플레이어가 설계한 이 코스에서 일본 투어 대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1980년 고마 컨트리 클럽하우스에 모인 재일동포들은 모국에 골프 대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재일동포 사업가 최종태 야마젠 그룹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부분 식민지 시대를 몸으로 겪었던 재일동포 1세대들의 애국심은 대단했다. 일본에서 어렵게 사업에 성공한 이들이 사업을 하기 위해선 골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골프장에서 자주 모임을 갖게 됐다. 일본은 당시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넘버원을 바라볼 정도로 대단한 기세였다. 일본의 골프 인기가 엄청나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때 모국의 골프계와 친선을 도모하고 한국의 골프 발전과 우수 선수가 나올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해선 한국에서 국제 수준의 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간사이 지역 경제인들이 뜻을 모은 게 신한동해오픈이었다.”
이들이 뜻을 모아 1982년 신한은행을 만들었다. 고마컨트리클럽, 신한동해오픈, 신한은행으로 재일동포들의 모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이어진 것이다.
신한동해오픈은 1~8회 대회를 동해오픈이란 이름으로 열었다. 동해는 재일동포들에게 고향을 상징하는 어머니 같은 단어다. 일본에서 모국을 보려면 동해 쪽을 바라봐야 한다고 해서 ‘신한동해오픈’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국내에 변변한 골프 대회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1500만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신한은행이 9회 대회부터 스폰서를 맡으면서 대회 이름이 현재와 같은 신한동해오픈이 됐다.
고마컨트리클럽은 일본골프다이제스트를 비롯해 골프 전문지로부터 여러 차례 일본의 100대 코스에 드는 이 골프장은 ‘맛집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주방장은 오키나와 출신 일본인인데 한국에서 요리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1993년부터 오랜기간 골프장 지배인을 지낸 다이라 고키 서일본개발주식회사 총지배인은 “워낙 클럽하우스 메뉴 인기가 좋아 먼저 식사 예약을 받고 그 다음에 골프 코스 예약을 받았다”고 했다. 초기 회원들은 대부분 재일동포였는데 지금은 일본인도 40% 정도 된다고 한다. 회원 구성은 바뀌어도 골프장 메뉴는 여전히 최고 인기라고 한다.
고마컨트리클럽을 만든 주역인 (故) 이희건 신한은행 초대회장은 고향의 바람소리를 느끼고 싶다며 골프장에 미루나무를 심었다. 초창기 골프장 로고 문양은 무궁화였다. 신한금융그룹 조용병회장은 “한시도 모국을 잊지 않은 재일동포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이 골프장에서 신한동해오픈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골프 대회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