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좁디좁았던 문을 열었다. 스포츠 데이터 전문 업체인 그레이스노트는 H조 2차전까지 1무 1패였던 한국이 조별리그를 통과할 확률을 11%로 예측했다. 우루과이(49%)나 가나(41%)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나 축구에서 이런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예상을 깨고 포르투갈을 물리치며 극적으로 조 2위(1승1무1패·승점 4)를 차지했으며 2010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에 16강 진출을 일궜다. 이젠 최강 브라질과 8강 진출을 놓고 대결한다.
◇부상에 체력 바닥나도 ”끝까지 뛴다”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국 선수들은 다치고, 지쳤다. 한 달 전 얼굴 수술을 받은 주장 손흥민(토트넘)은 검은색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3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했다. 포르투갈전엔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황희찬(울버햄프턴)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사실 (보호대) 벗으면 안 된다. 뼈가 살짝 실처럼 붙었다고 해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이라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위치고, 내가 좋아서, 임무를 알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었다. 리스크(위험)를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 종아리 근육을 다친 수비수 김민재(나폴리)는 포르투갈전을 결장했다. 4일 훈련에 참여해 가볍게 달리기를 한 그는 “(근육이) 찢어지더라도 뛰겠다”며 16강전 출전 의지를 밝혔다. 포르투갈전에 김민재 대신 들어온 권경원(감바 오사카)은 경기 중 근육 경련이 일어난 종아리를 바늘로 찔러가며 끝까지 버텼다. 권경원과 중앙 수비를 책임진 김영권(울산 현대)은 포르투갈전 전반에 동점골을 넣었는데, 후반 36분 골반 쪽 통증을 느껴 교체됐다. 1·2차전을 결장하고, 포르투갈전 후반 20분에 교체로 들어와 결승골을 터뜨린 황희찬도 햄스트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공격수 압박·중앙 밀집 수비 펼듯
브라질은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레알 마드리드), 히샤를리송(토트넘), 하피냐(FC 바르셀로나), 프레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막강한 공격진을 자랑한다. 미드필드진도 화려하다. 치치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많은 선수를 공격에 가담시키지 않는다. 역습에 대비해 수비 대형을 갖춘 상태에서 5명 정도로 공격을 펼친다. 그런데도 골을 뽑아낸다. 공격수들의 개인기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특히 네이마르가 뛸 때는 수비수 2~3명을 끌고 다니며 공간을 만들어 낸다. 득점 기회를 잡으면 높은 골 결정력을 발휘한다. 다만 공격 숫자가 적다 보니 네이마르 같은 특급 해결사가 없을 땐 득점 루트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한국은 포르투갈전에서 선보였던 대로 수비·미드필드진을 중앙에 집중해 브라질의 창을 막는 전술을 쓸 것으로 보인다. 이때 측면 수비가 허술해지는 위험이 생긴다. 한국으로선 공격수들이 전방에서부터 압박해주며 수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모두가 한 발씩 더 뛰며 ‘원 팀’으로 거함 브라질의 포화에 맞설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가나와의 2차전이 끝나고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아 포르투갈전엔 벤치 대신 관중석에 앉아야 했다. 벤투 감독 대신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 코치가 팀을 지휘했다. 관중석에 앉아 포르투갈전을 지켜봤던 벤투 감독은 브라질과의 16강전은 정상적으로 벤치에서 팀을 이끈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적절한 선수 교체와 전술적인 다양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강인(마요르카)의 출전 시간을 늘려가고, 포지션에도 변화를 주면서 다양한 공격 옵션으로 쓴다. 공중볼 다툼에 강한 스트라이커 조규성(전북 현대)도 조별리그 2· 3차전에 선발 출전시켜 효용을 극대화했다.
벤투 감독은 골키퍼 앞에 수비수 4명을 두는 ‘포백(4back)’을 기본으로 삼되, 포메이션(선수 배치)은 경기 상황이나 상대의 전술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한다. 포르투갈전 후반에 좌우 날개 공격수 손흥민과 이재성의 자리를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벤투 감독은 4일 공식 회견을 통해 “브라질은 우승 후보다. 우리는 잃을 것이 없고, 끝까지 뛰려는 의지의 팀이다. 포기하지 않겠다”면서도 “솔직히 네이마르는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하=성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