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통쾌한 설욕전이었다. 신민준(22) 9단이 중국 커제(24)를 제압, 이틀 전 패배를 되갚으며 제25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패권의 향방을 4일 열릴 결승 3번기 최종 3국으로 끌고가는 데 성공했다.
신민준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난 한판이었다. 한국 랭킹 4위 신민준은 이날 완급을 적당히 조절하며 26개월 연속 중국 1위를 질주 중인 커제에게 198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했다. 2017년 리민배 세계 신예 대항전 승리 이후 4년 1개월 만의 커제전 승리였다. 둘 간 통산 전적도 신민준 기준 3승 5패로 좁혀졌다.
하이라이트는 후반부를 장식한 대마 공방전. 좌변에서 우중앙으로 뻗어나온 거대한 흑 대마의 사활을 놓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흑은 단곤마(單困馬)인 데다, 백의 잔여 시간이 흑의 절반에 불과해 공격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국면이었다.
하지만 신민준은 침착하게 이곳저곳서 이득을 보더니 더 이상 대마를 추격하지 않고 끝내기로 승부를 마무리했다. 1국 패배 후 “2국서는 중반전에 좀 더 세밀한 수읽기로 임하겠다”고 했던 다짐을 실행한 것. 한국기원서 이 바둑을 지켜본 프로들은 “백의 작전이 성공했다”며 “반면 흑은 형세 판단 미스와 함께 몇 차례 결정적 실착을 범한 것이 패인”이라고 평했다.
신민준은 이로써 1승만 더 보태면 첫 세계 메이저 제패의 꿈을 이루게 된다. 2년 전 23회 LG배 때 거둔 4강이 그간 개인 최고 성적이었다. 결승까지 왕위안쥔, 딩하오, 이태현, 박정환을 차례로 제쳤다. 우승할 경우 세계 메이저 타이틀전 사상 45번째, 한국기사로는 15번째 챔피언이 된다.
커제가 우승한다면 동률이던 구리(8회)를 제치고 중국 기사 중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커제는 2015년 바이링배 우승으로 시작해 지난 연말 삼성화재배까지 매년 1~2회씩 우승해왔다. 아직 LG배 우승 기록은 없다. 중국은 지금까지 총 21명의 기사가 44회의 우승을 합작했다.
최종 3국도 1, 2국과 똑같이 서울과 베이징을 잇는 온라인 방식으로 4일 속개된다. 만약 1대1이 되면 4일 최종 3국을 치르게 된다. 백번(白番) 필승의 흐름 속에 최종국서 누가 백을 잡게 될지도 관심사로 모아지고 있다. 상금은 우승 3억원, 준우승 1억원.
[대국자 소감]
신민준 9단
1국 후 별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는데 모처럼 컨디션이 좋아 이겼다. 한 달 넘게 괴롭혀온 슬럼프가 끝난 것 같다. 백으로 두는 게 편한 느낌이다. 하지만 흑번 포석도 준비하겠다. 애당초 내가 이기면 ‘기적’이란 마음으로 출발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기적을 만들고 싶다.
커제 9단
초반은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좌변에서 실수가 나왔다. 이를 발견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 뒤로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다. 전체적으로 불만스러운 내용이다. 컨디션이 이틀 전보다는 나았지만 오늘도 별로였다. 내일 이긴다는 자신감도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