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첫 여성 패럴림피언’이라는 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여성 장애인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는 남자 장애인 육상의 호사인 라소울리(26)와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해 도쿄 패럴림픽(24일~9월 5일)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16일 수도 카불을 떠나 17일 일본 도쿄에 도착한 다음 사전 훈련지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장애인 태권도 선수인 자키아 쿠다다디가 고국에서 훈련하는 모습. /쿠다다디 인스타그램

그런데 최근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는 등 국내 정세가 극도로 불안해졌고, 공항이 마비되면서 선수들의 발이 묶였다.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위원회의 아리안 사디키 단장은 16일 대회 조직위에 불참 통보를 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는 17일 로이터통신에 “인류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데 가슴이 아프다”면서 패럴림픽 출전 무산에 대한 심경을 전했다.

지난주 IPC(국제올림픽위원회) 인터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 선수로는 처음 패럴림픽에 참여하게 되어 흥분된다”고 했던 쿠다다디의 상심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훈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공원 등에서 땀 흘리면서도 패럴림픽 무대에 서는 날을 손꼽았던 터였다.

아프가니스탄 제3의 도시 헤라트 출신인 쿠다다디는 왼팔꿈치 아래가 없는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역대 아프가니스탄 유일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로훌라 니크파이(2008·2012 올림픽 태권도 남자 동메달)를 보며 ‘태권 소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가족의 격려와 지원 속에 도장에 나가 남자아이들과 함께 한국의 국기(國技)를 배웠다.

쿠다다디는 조국의 장애인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롤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과거 탈레반 집권 시기에 여성은 스포츠 활동을 하거나 경기에 나서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장애인에겐 그 장벽이 더 높았다. 이 나라에서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쿠다다디였다. 2016년 이집트에서 열렸던 파라 태권도 챔피언십 여자 58㎏급 2위를 하고 돌아왔을 땐 환영 행사가 열렸고, 방송에도 소개됐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장애인 선수로 독보적인 성과를 올렸던 쿠다다디는 지난 5월 도쿄 패럴림픽 아시아 예선(요르단 암만) 태권도 49㎏급 3위를 하고 나서 와일드카드로 패럴림픽 참가 자격을 얻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 나란히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자랑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소박한 소망이 이뤄질 날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10대 시절 지뢰 폭발 사고로 왼손을 잃은 호사인 라소울리도 손에 잡은 듯했던 패럴림픽 참가 기회를 뺏겼다. 2016년 장애인 육상에 입문한 그는 2018 아시안 파라게임 100m 경기(손목 혹은 팔꿈치 아래 절단 등급)에 나섰다. 13초02라는 당시 기록은 10초대 후반~11초대 초반이었던 입상권과는 차이가 많았다. 트랙이 없어 집 근처 언덕을 달리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패럴림픽 참가는 꿈같은 일이다. 다른 선수들이 준비를 잘 했겠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아프가니스탄은 1996 애틀랜타 하계 패럴림픽에 처음 선수 2명(사이클)을 파견했고, 탈레반이 실각한 이후 2004 아테네 대회부터는 매번 선수 1~3명을 보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도전하려는 선수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탈레반이 재집권하면 아프가니스탄 스포츠는 예전의 암흑기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