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수는 조기 탈락하고도 메달리스트만큼 유명해지기도 한다. 유도 여자 48㎏급 강유정(25·순천시청)도 그런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도쿄올림픽 첫날인 지난 7월 24일 머리를 박박 깎은 채 경기장에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경기 전날 계체를 통과하려고 머리까지 자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삭발 투혼’이 무색하게 1회전(32강)에서 한판패를 당해 허무하게 첫 올림픽을 마쳤다.
그로부터 5개월 뒤, 강유정을 경기도 용인의 한 재활센터에서 만났다. 머리에 왁스를 발라 멋을 낸 그는 “원래 ‘올림픽이 끝나면 머리를 길러야지’ 했는데, 올림픽 때 일을 겪은 후 ‘짧은 머리를 하라는 뜻인가’ 싶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있다. 주위에서도 지금 길이가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가 계체에서 탈락할 뻔한 것을 두고 ‘결국 자기관리 부족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는 “인정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대회 몇 달 전부터 식단 관리에 들어갔으나 무릎 부상 탓에 운동량이 종전보다 적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도쿄로 출국하는 7월 21일 새벽 3시까지 운동과 사우나를 반복하다가 1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공항으로 향했다. 올림픽 당시 선수단과 관계자는 나리타 공항에서 침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강유정은 입이 말라서 침이 전혀 나오질 않아 혼자 코를 찌르는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야말로 피⋅땀⋅눈물로 얼룩진 계체였다. 최고 기온 40도에 가까운 날씨에 선수촌에서 ‘땀복’과 패딩 점퍼를 껴입고 계속 러닝을 했는데도 경기 전날 체중계에 서니 48㎏이 약간 넘었다. 쉴 새 없이 땀을 빼고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종료 30분 정도를 남겼을 땐 무게가 50g 정도 남았다. 침도 계속 뱉었지만 이미 입안이 헐어서 침이 아닌 피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그는 “머리를 깎겠다”고 했고, 코치가 조직위 관계자에게 문구용 가위를 빌려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강유정은 가위가 제대로 들지 않아 머리가 뽑혀나가는 와중에도 피가 섞인 침을 계속 뱉어냈다.
“계체에서 떨어지면 은퇴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어요. 선수로서의 자질 문제라고 생각해서요. 잘린 머리카락을 들어보고 ‘이 정도면 50g은 되겠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떨렸는데, 체중계에 올랐더니 딱 48.0㎏이 돼서 숨을 참았죠. ‘OK’ 사인이 나온 뒤 계체장을 나가는데 그때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러고 나선 이온음료부터 마시고, 선수촌 미용실에 가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다듬었죠.”
그는 다음 날 경기에서 기술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반격을 당해 세로누르기 한판패를 당했다. 경기 시작 27초 만에 절반을 따냈다가 막판에 한판을 내줘 더 아쉬운 패배였다. 그는 “근육량이 많아 수분 섭취만 잘하면 회복은 매우 빠른 편이라 경기 당일 몸 상태와 체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기술적인 문제였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나중에 영상을 보니 기술이 제대로 걸린 게 아니었더라고요. 그런데도 제가 끝까지 돌리려고 하다가 누르기를 당해서 심판이 ‘그쳐’를 선언하지 않은 것 같아요. 상대가 유연하고 굳히기를 잘하는 선수란 것도 알고 있었는데 제 욕심이 너무 컸어요. (도쿄올림픽을 통해) 기술에 대해 보완할 점을 찾은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온 강유정은 친구와 동료들에게 ‘민머리 스타’ ‘감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만 9개를 선물 받았고, ‘삭발한 게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거울을 보고 처음엔 너무 이상했는데, 나중엔 나도 모르게 ‘생각보다 괜찮은데?’라고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두 달 전 네 번째 무릎 수술을 받은 그는 지난달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은 건너뛰었고, 3월에 열릴 2차 선발전을 바라보며 훈련 중이다. 그는 힘이 좋으면서도 기술이 다양해 한 체급을 올려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란 평을 받지만, 일단 당분간은 48㎏으로 도전할 작정이다.
강유정의 허리에는 오륜 문신이, 허벅지에는 호랑이와 무궁화, 태극기 문신이 있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겠다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올 4월 새겼다고 했다. 그는 또 ‘양서우’란 이름으로 개명하는 절차도 밟고 있다. 새아버지의 성을 따랐고,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이라고 한다.
“아직 아시안게임에선 한 번도 뛰지 못했는데, 새 이름으로 내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파리올림픽에도 출전하는 게 목표예요. 만약 파리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쿄에서 힘들게 경험하고 교훈을 얻은 만큼 그땐 꼭 성과를 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