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사우디 프로축구 프로페셔널 리그 알 이티하드는 7일 프랑스 축구 스타 카림 벤제마(36)와 3년 계약을 맺었다고 밝히며, 그가 아랍어·영어가 적힌 노란색 유니폼을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벤제마는 지난해 그해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상을 받은 세계적인 공격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올 시즌 스페인 프로축구 라 리가에서 19골로 득점 2위에 올랐다. 벤제마는 2009년부터 14년 동안 세계 최고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 몸담았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재계약이 유력했지만 ‘오일 머니’가 치고 들어오며 상황이 급변했다. 알 이티하드가 벤제마에게 제안한 연봉은 2억유로(약 2781억원)로 추정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약 33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벤제마가 사우디가 흔드는 돈다발의 유혹을 떨치긴 쉽지 않았을 터다. 결국 전통의 명가 레알 마드리드는 벤제마를 대체할 스트라이커 자원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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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가 스포츠 분야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2016년 석유 의존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사회·문화적 전환을 이룬다는 ‘비전2030′을 선포한 바 있다. 스포츠가 대표적 타깃이다. 사우디 체육부는 최근 “사우디 국부 펀드(PIF)가 축구 네 구단 지분 75%를 보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유명 스포츠 선수들을 자국 리그로 빨아들이고 있는 건 이뿐 아니다. ‘돈보다는 낭만을 좇는 게 낫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연봉 제안이 잇따른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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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규모 6000억달러(약 782조원)의 PIF를 등에 업은 사우디 축구 팀들은 더욱 공격적인 영입전을 펼칠 전망이다. 당장 수준급 미드필더 응골로 캉테(32·첼시)의 사우디행이 발표될 예정이며, “사우디가 2024년 손흥민(31·토트넘) 영입을 목표로 물밑 작업 중이다”라는 보도도 나온다. 곧 은퇴 예정인 나이 든 선수만 노리는 게 아닌 셈이다. 작년 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알 나스르)가 사우디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이젠 영국 현지 언론마저 ‘10명이 넘는 스타급 선수가 사우디에 가세할 수 있다’고 보도한다. 과거 오스카(32), 헐크(37), 파울리뉴(35), 알레샨드리 파투(34·이상 브라질), 카를로스 테베스(39·아르헨티나), 그라치아노 펠레(38·이탈리아) 등 쟁쟁한 선수들과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끈 마르첼로 리피(75), 잉글랜드를 지휘한 파비오 카펠로(77) 등 명장들이 ‘차이나 머니’에 넘어가 중국 리그로 향했다면, 이제 그 행선지는 사우디다. 호날두는 벤제마와 같은 연 2억유로를 받고 있고, 사우디 알 힐랄은 최근 리오넬 메시(36·파리 생제르맹)에게 그 2배인 4억유로를 연봉으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중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오스카가 상하이 상강에서 받는 금액은 3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아예 구단도 사들였다. PIF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2021년 3억파운드(약 4856억원)를 들여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머니 파워’는 효과적이었다. 지난 2021~2022시즌을 11위로 마쳤던 뉴캐슬은 올 시즌 4위로 수직 상승, 상위 4팀에 주어지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알토란 같은 선수들을 영입한 게 주효했다.

사우디는 스포츠 대회 유치에도 총력을 기울인다. 세계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성 경기부터 국제 종합 대회까지 가리지 않는다. 2018년 사우디는 WWE(미 프로레슬링)와 10년 계약을 맺고, 대규모 선수가 참가하는 ‘로열럼블’을 상업 도시 제다에서 열었다. WWE의 사상 최대 입장권 판매 실적은 2016년 ‘레슬마니아’에서 세운 1730만달러(약 225억원)인데, 사우디는 매년 단 2번의 이벤트로 1억달러(약 1303억원)를 보장한다. 작년엔 제다에서 대전료만 2000억원이 넘는 프로복싱 헤비급 타이틀 매치(올렉산드르 우시크-앤서니 조슈아)가 열렸다. 2021년부턴 자동차 경주 포뮬러원(F1) 그랑프리를 개최하고 있으며, 스페인 축구 클럽 대항전인 ‘수퍼컵’도 스페인이 아닌 사우디에서 열린다.

이런 행보의 속내엔 ‘스포츠워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사우디는 인권 탄압국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고 있는데, 스포츠를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아랑곳 않는다. 2029 동계 아시안게임(네옴시티), 2034 하계 아시안게임(리야드) 개최를 확정했고, 2030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2036 하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한다. 사우디는 작년 인접국 카타르가 갖은 논란 속에서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걸 봤다. 충분한 자금력을 가진 사우디도 세계의 화려한 관심이 자국에 집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