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한국 시각) 미 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 홈구장 전광판에 일본 만화영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가 등장했다.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고무 팔을 길게 늘여 슬램 덩크슛을 하는 장면이 나오자 관중들은 환호했다. 루피가 레이커스 스타 선수 르브론 제임스, 루카 돈치치와 같은 코트에 선 듯한 느낌을 줬다. 레이커스는 경기장 안에 ‘원피스’ 인기 캐릭터 사진 촬영 공간도 마련했고, 넷플릭스가 만든 ‘원피스’ 드라마 주인공 배우 이나키 고도이(멕시코)도 현장을 찾았다. 레이커스엔 일본인 하치무라 루이가 뛰고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 스포츠 업계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협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레이커스와 원피스뿐 아니라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나루토’ 등과 손을 잡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인기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비고 있고, 일본 선수들이 대거 미국 프로 무대에 진출하면서 일본 팬들의 관심이 높아진 현상을 반영했다. 전에는 ‘심슨 가족’(MLB), ‘스폰지밥’(NFL·미국 프로풋볼), 디즈니(NBA) 등 미국산(産) 애니메이션을 주로 활용했으나 이젠 그 추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조짐이다.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 관람이 아닌 복합 문화 체험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시대상과도 관련이 있다.
MLB는 지난 3일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귀멸의 칼날’과 협업을 예고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귀멸의 칼날’ 장면과 MLB 로고가 함께 등장한다. 다만 구체적 내용은 추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컬래버레이션(협업)은 오는 18~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MLB 도쿄 시리즈’를 앞두고 관심을 더 끌어올리려는 전략의 하나로 풀이된다. 도쿄 시리즈에는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나오는데 다저스에는 일본인 수퍼스타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가 뛰고 있고, 컵스에는 스즈키 세이야, 이마나가 쇼타가 있다.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나루토’와 협업해 유니폼 등 의류 상품을 선보였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관람객에게 ‘원피스’ 인형을 선물로 주고 등장인물의 복장 흉내 행사도 열었다. 레이커스는 ‘짱구는 못 말려’ 주인공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일본에선 야구와 농구가 인기 종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데다 그 활동 영역이 미국으로 넓어졌다. 농구 역시 NBA 인기가 남다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워싱턴 위저즈 등 NBA 팀들이 직접 일본에서 시범 경기를 갖기도 했고,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은 만화 ‘슬램 덩크’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패트릭 유잉(채치수), 마이클 조던(서태웅), 매직 존슨(윤대협) 등 실제 NBA 선수들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란 해석이 많다. 중간중간 짤막한 NBA 단편 지식들도 나온다.
여기에 미국 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인기가 각종 스트리밍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를 타고 급등하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크런치롤은 미국 내 일본 애니메이션 전진 기지로 통한다. 미국 청소년들도 ‘재팬 애니메이션’을 유행의 척도처럼 즐긴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2021년 북미에서만 4950만달러(약 700억원)를 벌어들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 전 세계 흥행 1위. ‘원피스’는 넷플릭스가 1억4400만달러를 들여 실사 드라마(8부작)를 만들 정도였다.
NBA 선수 자이언 윌리엄슨(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은 “아닌 척하지만 NBA 선수 80%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다”면서 “최고의 해적이 되겠다는 것(‘원피스’)처럼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과 NBA 선수들은 닮았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