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브레이커’ 테오 엡스타인(47)은 지난 2017년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위대한 세계 지도자 50명’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를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이다.
당시 포춘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엡스타인은 데이터에 집착하는 고리타분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지도자로는 그렇지 않다. 성공한 경영자였던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의 성공을 컵스에서 재현하기 위해 리더로 거듭났다’며 엡스타인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포춘은 엡스타인의 성공 요인을 혁신과 발상의 전환으로 꼽았다. 2002년 11월 만 29세로 당시 역대 최연소로 보스턴 단장직에 오른 엡스타인은 야구를 통계, 데이터로 분석하는 방법론 ‘세이버메트릭스’ 개념을 접목시켰다. 현장 감에 의존하던 기존 야구에서 벗어나 갖가지 숫자 중심의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팀을 구성하고 시즌을 운영했다.
야구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비리그 예일대 출신의 ‘엘리트’ 엡스타인은 단장 부임 2년째였던 2004년 보스턴에 86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기며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 2007년 보스턴에서 두 번째 우승을 맛봤고, 2012년 컵스 사장으로 옮긴 뒤 체계적인 리빌딩 과정을 밟아 2016년 108년 만의 우승으로 ‘염소의 저주’까지 끝냈다.
이렇게 화려한 업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경영인이 된 엡스타인이 18일(이하 한국시간) 계약기간 1년을 남겨놓고 컵스 사장직을 사임했다. 2개팀에서 9년씩, 18년간 쉼없이 달려온 엡스타인은 “이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자유롭게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말로 사임 이유를 밝혔다.
단순히 휴식이 필요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자신의 오랜 야구 철학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게임이지만 진화 방식에서 약간의 위협이 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나처럼 선수 개인과 팀을 분석하며 극대화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경영인들이 야구의 예술적인 가치와 오락적인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엡스타인의 말이다.
이어 그는 “삼진율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우리는 야구 경기에서 더 많은 액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수들의 운동 능력을 조금 더 부여주며 팬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다시 선수들에 의한 야구 방법이 나올 것이다. 더 이상 구단에 있지 않은 만큼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엡스타인의 말처럼 삼진이 늘면서 인플레이 타구 비율이 줄었고, 정적인 야구로 인해 재미가 반감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대세로 자리 잡은 뒤 어느 정도 변수가 통제됐고, 예측 불가능한 야구의 매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이에 책임을 느낀 엡스타인이 추후 복귀했을 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궁금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