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이후광 기자] '아듀! 느림의 미학'

유희관(36)은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의 시즌 2차전에 앞서 인터뷰를 갖고 정든 두산 팬들 앞에서 은퇴식을 치르는 소감을 전했다.

유희관은 현역 시절 두산을 대표하는 좌완투수였다. 장충고-중앙대를 나와 2009년 2차 6라운드 42순위 지명을 받은 그는 ‘느린 공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딛고 2013년 데뷔 첫 10승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 이는 이강철, 정민철, 장원준 등 리그 최정상급 투수에게만 허락된 대기록이었다.

2020시즌을 마치고 1년 총액 10억원에 FA 계약을 맺은 유희관은 지난해 9월 19일 고척 키움전에서 두산 좌완투수로는 최초로 100승 고지에 오르는 금자탑을 세웠다. KBO 역대 32번째, 좌완 7번째 100승 대열에 합류한 순간이었다.

유희관은 작년 11월 보류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현역 연장을 추진했지만 오랜 고민 끝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로 결정했다. 통산 281경기 101승 69패 평균자책점 4.58을 남기고 올해 1월 18일 전격 은퇴를 선언했고, 이후 KBS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현장을 누비고 있다.

다음은 유희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은퇴 기자회견을 할 때와 지금 기분의 차이는.

그 때보다 아직까지 괜찮다. 은퇴식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고, 지금은 괜찮은데 이따가 울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먹었는지 울음이 많아졌다. 슬픈 은퇴식이 되겠지만 최대한 유쾌하게 하려고 한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

▲해설위원은 잘 맞는지.

다들 은퇴하면 해설위원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셨다. 말을 잘 하는 것과 해설은 다르다.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팬들이 알기 쉽게끔 설명해야 하고, 투타 기술과 관련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다행인 건 서울 출신이라서 목소리는 듣기 좋다는 평을 들었다. 만약에 사투리를 썼으면 좀 그랬을 텐데 그건 좋게 봐주신다. 전문성만 키우려고 한다.

▲그 동안 야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지금이다. 야구를 해서 은퇴식까지 할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으로 생각 못했다. 영광스러운 자리다. 야구를 괜히 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성적이 안 났을 때다. 야구선수가 직업이라 좋을 때는 잘 흘러가지만 안 되면 욕도 많이 먹고 그랬다.

▲정재훈 코치, 최원준이 은퇴를 많이 아쉬워했다.

정재훈 코치님은 입단 때부터 날 굉장히 잘 챙겨주신 선배였다. 전지훈련 가서도 밥 먹으러 같이 다니고 쉴 때 방에서 같이 놀았다. 지금도 잘 지낸다. 가족끼리도 편하게 지낸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 최원준도 내가 많이 예뻐했던 후배다. 투수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본인들이 깨닫고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끔 조언을 많이 했다. 그걸 다 받아주고 이해해준 후배였다. 원준이에게 오늘 꼭 이기라고 했다. 분위기 안 좋게 은퇴식 하면 안 된다. 지면 관중들이 열 받아서 나갈 수 있다(웃음).

▲두산 경기 해설이 조심스러울 것 같다.

아무래도 두산 출신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잘했을 때는 잘한 대로 칭찬하고, 못했을 때는 못한 대로 냉정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

▲오늘 가족들도 참석하나.

부모님도 오신다. 부모님은 내가 경기할 때도 야구장에 안 오셨다. 경기하는 모습을 떨려서 못 보셨다. 나보다 애타게 가슴 졸이면서 야구 보신 것 같은데 오늘 또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온다고 하셨다. 울컥하다. 내가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방송에도 많이 나갔지만 부모님 이야기는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야구하는 아들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신 것 같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다.

▲현역 시절 기억나는 은사가 있나.

야구 실력이 처음부터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1차 1번으로 각광받고 입단한 것도 아니었다. 느린 공으로 편견과 많이 싸웠다. 그런 핸디캡 속에서 누구 1명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구속이 안 나와서 스트레스 받는 투수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날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스트라이크존도 넓어져서 그걸 이용한다면 느린 공, 빠른 공 다 각광받을 수 있다. 잘 이용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이제 느린공 투수는 제2의 유희관이라고 기사에 나오더라. 내가 어느 정도 느린 공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트렌드를 리그에 제시한 것 같다. 선배이자 야구인으로서 뿌듯하다.

▲은퇴 결정 이후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져서 아쉽지 않았나.

은퇴를 번복할 순 없다. 존이 넓어져서 다들 1년 더하지 그랬냐고 하셨는데 이 상황에서 은퇴 아쉬움은 사라진 상태다. 야구장을 오면 아직까지 설렌다. 오늘도 뭔가 선발 등판하는 날처럼 긴장됐다.

▲은퇴가 실감나는 순간은.

시범경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TV로 볼 때 느껴졌다. 스케줄이 없어 늦잠 잘 때도 그렇다. 그리고 과거에는 '안녕하세요 유희관 선수'라고 불렸는데 요즘은 어디 가면 유위원이라고 불러주신다. 귀에 익숙하지 않지만 난 이제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이다.

▲해설위원이 보는 올해 두산은.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5강 후보에서는 뺐다. 왜냐면 난 해설위원이다. 선수 때는 몰랐는데 이걸 막상 하려니까 많이 힘들더라. 최근 몇년간 주력 선수들이 빠져서 올해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장 기대되는 팀이 두산이기도 하다. 그만큼 두산은 주력 선수가 빠져 나가고 계속 힘든 상황에서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갔다. 두산만의 보이지 않는 팀 분위기, DNA가 있다. 그래서 올해도 내심 기대가 된다. 두산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애착이 있다.

▲유희관의 등번호 29번을 누가 달았으면 좋겠나.

영구결번은 욕심이지 않았나 싶다. 좋은 선수가 달았으면 좋겠다. 최승용, 이병헌 등 왼손투수 중에서 1명이 달지 않을까 싶다. 이병헌은 고교 시절 29번을 달았다. 내 번호를 단다고 해서 특별한 번호가 아닌 그 선수들이 달았을 때 그들의 29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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