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리스타일스키 대표 콜비 스티븐슨(24)은 지난 2016년 5월 트럭 교통사고로 두개골 일부가 48개 뼛조각으로 부서지고, 얼굴·갈비뼈까지 크게 다쳤다. 담당 의사는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진 그를 향해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6년 뒤 그에겐 기적이 또 한번 일어났다. 스티븐슨은 피나는 재활 훈련으로 사고를 당한 지 1년도 안 돼 슬로프에 다시 섰고, 지난 9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 빅에어 결승에서 깜짝 은메달을 차지하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그는 공중에 도약해 1800도(5바퀴) 회전하는 연기를 선보이며 기량을 뽐냈다. 스티븐슨은 “집에서 가족들이 내 경기 모습을 보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점프했다”고 했다.
뜻하지 않은 사고와 병마,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인간 승리’ 스토리는 언제나 올림픽 팬들에게 감동을 준다. 특히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판정 논란·도핑 의혹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낸 이들의 도전은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고 올림픽에 선 선수들에게 메달 색깔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경기 자체를 즐기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운동선수들에겐 부상의 위험이 늘 따라다닌다. 올림픽 같은 중요한 무대라고 예외가 없다. 알파인스키 선수 소피아 고지아(30·이탈리아)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 3주 전인 지난달 초 한 대회에서 넘어져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종아리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무릎을 구부리지 못해 스쿼트(앉았다 서는 하체 운동)도 할 수 없었다. 코치까지 올림픽을 포기하라 했지만 고지아는 홀로 출전을 강행했다. 지난 15일 알파인스키 여자 활강에서 이를 악물고 뛴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경기 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야 했기에 추가 부상의 두려움 속에서도 내 모든 것을 쏟았다”며 “난 그저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한국 루지 대표 임남규(33)는 지난해 말 월드컵 대회에서 뼈가 보일 정도로 정강이 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치료를 위해 귀국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유럽 대회에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쇼트트랙 대표 박장혁(24)은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날에 맞아 왼손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11바늘을 꿰매고 대회를 이어가 5000m 남자 계주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헝가리 스노보드 대표인 카밀라 코즈바크(18)는 4년 전 소아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평생 인슐린을 맞고 엄격한 식이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병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노보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코즈바크는 최하위에 가까운 성적을 거뒀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당뇨병 환자들에게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 기쁘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투병 기간을 거쳐 오히려 기량과 성적을 끌어올린 선수도 있다. 캐나다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대표 맥스 패럿(28)은 2018년 말 림프계 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직전 평창에서 슬로프스타일 은메달을 딴 스타 선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패럿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12차례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투병기를 올리면서 재활 훈련을 병행했다. 기량을 회복한 그는 베이징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