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지만, 이젠 모두가 안다.
6000여명 홈 관중으로 가득찬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중국 국가(國歌) 연주를 멈춰 세운 선수는 지유찬(21·대구시청)이다.
지유찬은 25일 열린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우승(21초72)하며 중국 안방에 태극기를 꽂았다. 앞서 열린 9개의 종목에서 중국이 금메달을 쓸어 담는 독주를 끊어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그래서 지유찬이 누구야?”
2남 중 장남으로 9살 때 물속에 뛰어든 지유찬은 전남중-광주체고를 나왔다. 12살이던 2014년 대한체육회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등 일찍이 두각을 보였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박태환(34·은퇴)의 ‘주종목’이었던 자유형 400m를 소화하는 선수였다. 중거리 수영 간판을 꿈꿨지만, 고교 때부터 단거리 선수로 전향해 자유형 50m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수영 선수로선 상대적으로 작은 키(176cm) 때문이다. 수영계엔 키 190cm 전후의 거구들이 즐비하다. 실제로 이날 50m 결선에서 함께 시상대에 선 홍콩 호이안옌터우(26·188cm·은메달), 중국 판잔러(19·189cm·동메달)와 비교해도 신장이 10cm 이상 차이 난다.
팔다리가 길수록 터치와 영법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차이는 더 커진다. 지유찬은 20초 안팎의 시간에 결정되는 자유형 50m를 통해 이런 신체적 불리함의 여파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는 키에선 우위를 점할 수 없으니 ‘반응 속도’ ‘힘’과 ‘호흡’ 개선에 중점을 뒀다. 작은 키에서 나오는 탄력성과 타고난 반응 감각으로 쾌속 출발을 장착했다. 결선에서 지유찬은 두 번째로 빠른 반응속도(0.56초)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물살을 가르는 힘을 위해선 팔을 완전히 펴서 풍차처럼 돌리는 스트레이트(straight) 영법을 터득했다. 수면에 채찍처럼 내리꽂는 듯한 엄청난 힘으로 강한 추진력을 얻는 영법이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고개도 젖히지 않는 일명 ‘노브레싱(no-breathing)’ 영법을 연마했다. 결선에서도 지유찬은 숨을 쉬기 위해 고개도 젖히지 않은 채 역영을 펼쳤다. 자유형 50m에선 숨 쉬는 시간조차 아깝다. 김동현 TV조선 해설위원(상하이 동아시안게임 자유형 200m 은메달리스트)은 “지유찬은 과거에 보통 35m쯤에서 호흡을 한 번 했는데, 피 나는 연습으로 50m까지 무호흡으로 가는 방법을 익혔다”고 설명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깜짝 스타로 발돋움한 지유찬은 이제 아시아 기록 경신과 약 10개월 뒤로 다가온 파리올림픽 입상을 노린다. 그가 이번에 작성한 21초72는 시오우라 신리(32·일본)의 아시아 기록(21초67)엔 불과 0.05초 모자랐다. 아울러 지난 도쿄 올림픽 50m 결선에 대입했을 땐 공동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0개월 동안 기록을 더 단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2개월 전인 지난 7월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에서 그의 기록은 22초17이었다.
‘물속 탄환’들이 나서는 남자 자유형 50m에서 지유찬은 2002년 부산 대회 김민석(공동 1위) 이후 21년 만에 한국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올해 21세. 그의 눈부신 역영은 이제 막을 올렸다.
지유찬은 “(이번 대회가) 수영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동기가 된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