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권도의 아킬레스건으로 통하는 남자 80kg급에서 박우혁(23·삼성에스원)이 아시안게임 정상을 거머쥐었다.
박우혁은 27일 중국 저장성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태권도 80kg급 결승에서 살레 엘샤라바티(요르단)을 맞아 2대0으로 승리했다. 박우혁은 1라운드에서 몸통 공격 두 번을 적중하며 5-0으로 앞서갔다. 상대에 추격을 허용하며 5-4까지 쫓겼지만, 종료 7초를 남기고 머리 공격을 성공했고, 비디오 판독 결과 득점이 인정되면서 8-5로 1라운드를 따냈다. 박우혁은 2라운드에서도 몸통 공격으로 먼저 2점을 뽑아냈다. 혼전 끝에 박우혁은 6-5로 앞서며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앞선 준결승이 고비였다. 메흐란 바르호르다리(이란)와 대결에서 3라운드 막판 10-10 동점을 이룬 박우혁은 동점 시 회전 기술, 머리·몸통 공격 시도 등을 집계해 승자를 가리는 규정에 따라 라운드 스코어 2대1로 승리했다. 지난 25일 혼성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낸 박우혁은 80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박우혁은 한국 태권도 ‘마의 체급’으로 불리는 80kg급에 나타난 구세주다. 역대 올림픽 최다인 12개의 금메달을 딴 종주국 한국도 80kg급엔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 2020 도쿄올림픽까지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은 초반 4대회에선 한 국가에서 남녀 2체급씩만 출전을 허가하는 조항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80kg급엔 선수를 내보내지 않았는데 그 제한이 풀린 리우·도쿄 대회에서도 랭킹 5위 안에 드는 선수가 없어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 80㎏급은 올림픽 태권도 8체급 중 한국이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무대로 남아 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2010 광저우 대회부터 치러진 80kg급에서 한국은 3대회를 치르는 동안 은메달 1개(2018년 이화준)에 그쳤다.
80kg급 우승에 목마른 한국 태권도 갈증을 풀어준 선수가 바로 박우혁이다. 그는 지난해 과달라하라 세계선수권 80kg급에서 한국 선수로는 23년 만에 정상에 오르면서 새로운 희망을 안겼다. 박우혁은 지난 6월 바쿠 세계선수권에선 8강에서 탈락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정상에 등극하며 내년 파리올림픽 전망을 밝혔다. 한국 태권도는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노 골드’에 그쳐 파리에서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
박우혁은 일곱 살 때 그의 기량을 알아본 체육관 관장의 권유로 태권도의 길로 접어들었다. 직업군인(공군)이었던 아버지는 처음에 아들이 운동 선수가 되는 걸 반대했지만, 장난기도 잠재울 겸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기엔 박우혁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학창 시절 전국 대회를 휩쓴 그는 2019년 처음 국가대표가 된 후 5년 동안 태극 문양을 놓치지 않고 있다.
박우혁의 금메달 비결은 끊임 없는 시뮬레이션. 화장실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도 수시로 경기 영상을 보며 영상 속 자신과 싸우는 모습을 그려본다고 한다. 192㎝라 국제 무대에서 키에선 크게 밀리지 않지만 중동 선수에 비해 다리가 짧은 단점을 스피드와 유연성으로 만회했다.
이날 경기장엔 박우혁의 부모님이 함께해 아들과 금메달 순간을 지켜봤다. 박우혁은 “학창 시절 늘 저를 훈련장에 태우고 다니고 체력 좋아지라며 매일 사골국을 끓여주신 어머니와 명예 퇴직을 하신 뒤 해외를 막론하고 관중석을 지켜주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가장 큰 성원을 보내주시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이 금메달을 바친다”고 말했다.
남자 68kg급 진호준(21·수원시청)은 동메달을 땄다. 준결승에서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울루그벡 라시토프(우즈베키스탄)에 0대2로 패했다. 아시안게임 태권도는 3~4위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준결승전에서 패한 선수에게 모두 동메달을 수여한다. 한국 태권도 겨루기 종목은 25일 남자 58kg급 장준, 26일 여자 53kg급 박혜진에 이어 이날 박우혁까지 매일 하나씩 금메달을 수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