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서니 최(36·한국명 최선)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는 2024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 종목에 미국 여자 대표팀 선수로 나선다. “쑥스러워하고 겁은 많지만 사실 드러내고 싶은 게 많았던 아이였다”라면서 과거를 돌아봤다.

어릴 적 영어를 주로 했지만 한국말도 서투르게나마 할 줄 알았다. 학교 점심으로는 한식과 미국 음식을 전부 가져왔다. 외모는 동양인이었지만 옷은 미국식을 입었다. 덕분에 보수적인 켄터키주에서 인종차별에 노출되곤 했다. 또래 백인 아이들은 복도에서 만나면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명랑했던 아이는 내성적으로 변했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움츠러든 학창 시절 내내 어깨를 펴진 못했다.

한국계 미국인 서니 최는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이번 올림픽 미국 브레이킹 국가대표로 나섰다. 그는 "브레이킹은 진실된 나를 만나는 탈출구"라고 했다. 사진은 서니 최가 미국 국내 대회에서 경기하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그에겐 꿈이 있었다. 올림픽에서 환호받는 것. 세 살 때 TV 속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체조를 본 뒤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부모에게 진지하게 체조 선수를 하고 싶다고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잘하는 공부를 놔두고 왜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서니 최는 학업에 전념했고 미국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학부 생활을 마친 뒤 세계 최고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와튼스쿨에 들어갔다.

와튼스쿨을 졸업하고는 2011년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에 입사했다.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부서 책임자까지 올랐다. 억대 연봉을 받았다. 하지만 서니 최는 마음 한편이 늘 허전했다. 실은, 서니 최가 걸어온 길은 부모님이 정해준 길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기업에 들어가 고연봉자로 자리매김하는 전형적인 미국 아시아 이민 2세의 성공 과정. 체념한 서니 최는 인생을 흐르는 물길에 맡기고 있었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동안 서니 최가 잠시 쉬어 가는 돌다리가 있었다. 브레이킹이었다. 와튼스쿨 시절 캠퍼스에서 우연히 춤을 추고 있던 그들을 봤다. 체조를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몸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공통점. 모범생이었던 그가 수업에 빠지면서까지 춤을 출 정도로 매료됐다. 1970년대 초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브레이킹은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각 국가의 문화가 덧칠됐다. 한국에 뿌리를 뒀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 서니 최와 비슷했다. 그는 “나의 정체성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지 파헤치는 계기도 됐다”고 했다. 서니 최의 집 한편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 직장에서 새벽에 퇴근해도 그곳에서 춤을 춘 뒤 잠에 들곤 했다. 실력이 점차 단순 동호인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019 월드 어반게임스에서 은메달, 202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브레이킹선수권에서는 7위에 올랐다. 공부만 했을 때는 찾지 못했던 재능이었다.

그러던 작년 초 브레이킹이 2024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니 최는 흔들렸다. 어릴 적 묻어 뒀던 올림픽 꿈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6개월 고민 끝에 마음을 먹었다. “그때 처음으로 저 자신에게 진심으로 베팅했어요. 그동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어요. 이번에는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놓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인생을 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브레이킹에 전념하니 기량 성장세가 더욱 빨랐다. 그는 작년 10월 열린 아메리카 대륙 최고 권위 종합대회 2023 팬아메리카 게임에서 브레이킹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파리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서니 최는 이날 본인이 나설 무대인 파리 콩코르드 광장 브레이킹 무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즐길 거예요. 여기까지 돌고 돌아 왔거든요. 금메달을 따면 정말 좋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거니까요. 하지만 금메달을 안 따지 않아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요. 브레이킹은 진실된 나를 만나고 싶었던 저에게 탈출구였어요. 그리고 지금 스스로를 정말 잘 알게 됐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브레이킹은 빠른 음악에 맞춰 ‘댄스 대결’을 벌이는 종목. 남자 선수는 비보이, 여자 선수는 비걸이라 부른다. 이번 대회 브레이킹 여자 종목은 9일 밤 시작되며, 메달 주인공은 10일 새벽 가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