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예선이 열린 지난 7일(현지 시각) 한국 높이뛰기 간판 우상혁(28·용인시청)의 머리는 빡빡 밀려 있었다. 군인 신분으로 출전해 4위를 한 3년 전 도쿄 올림픽 때보다도 훨씬 머리카락이 짧았다. 하얀 두피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민머리에 가까웠다.
우상혁은 올림픽을 앞두고 홍콩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지난 4월부터 머리를 삭발하고 있다. 이발기를 들고 다니면서 매일 스스로 머리를 민다. 그가 삭발하는 건 이번 올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려는 뜻이다. 그는 올림픽 100일을 남겨둔 지난 5월 국내 대회에 참가해 “올림픽에 전념하고자 삭발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100일 동안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머리를 짧게 민다고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상혁은 “삭발한다고 해서 경기력이 좋아지지는 않지만 뭐라도 해야 무슨 일이 생기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 올림픽에서 1㎝라도 더 뛰어보자는 마음으로 머리를 밀었다”며 “이 정도로 각오가 돼 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우상혁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육상 트랙·필드 종목 최초 올림픽 메달을 노린다. 한국 육상은 지금까지 마라톤에서만 두 차례 메달(1992 바르셀로나 황영조 금, 1996 애틀랜타 이봉주 은)을 따냈다. 도쿄 올림픽 때 역대 최고 성적(4위)을 거둔 그는 이후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전했다. 도쿄 때 ‘메달 안정권’으로 여긴 2m35를 넘고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파리에서 풀겠다는 각오다.
일단 파리에서 출발은 나쁘지 않다. 2m27을 2차 시기에 넘으며 강력한 우승 후보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과 공동 3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메달 경쟁자 중 하나였던 주본 해리슨(미국)은 예선 탈락했고, 도쿄 공동 금메달리스트 바르심과 잔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 컨디션도 최고가 아니다. 바르심은 2m27을 넘은 후 종아리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를 끝냈고, 탐베리는 3일 전 신장결석 증세로 응급실 치료를 받은 여파로 2m27에 아예 실패했다. 우상혁은 “머리 밀길 잘했다. 삭발한 게 빛을 발할 날이 오는 것 같다”며 “도쿄 올림픽 4위도 뜻깊었지만, 2m35를 뛰고도 메달을 못 딴 비운의 4위이기도 했다. 이번엔 이왕 하는 거 시상대 꼭대기에 올라가서 애국가 한번 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 높이뛰기 결선은 한국 시각으로 11일 새벽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