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했다. 4일 일본 도쿄 베이사이드 호텔 아주르 다케시바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공동취재단과의 기자간담회를 찾은 메달리스트 ‘주주 듀오’ 주정훈(27·SK에코플랜트), 주영대(48·경남장애인체육회) 역시 기꺼이 다른 이의 꿈이 되기를 자처했다.

주정훈이 지난 3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 태권도 75kg급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는 모습./사진공동취재단

◇주정훈 “동정의 대상이 아닌 동경의 대상”

지난 3일 태권도 남자 79kg급 동메달을 목에 건 주정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 되자’고 이야기했는데 정말 동경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남들과 틀리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 장애인선수촌에 들어가고 나서 장애는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 “나는 뒤늦게 알았지만 장애가 있는 유년기, 청소년기 여러분들도 ‘내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밖으로 나와야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이 도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태어난 직후부터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 밑에서 컸다. 두 살 때 할머니가 지리를 비운 사이 농기구에 오른손이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손목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가장 하얗지만 그래서 가장 쉽게 더러워지는 도복처럼 태권도는 주정훈에게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원래 비장애인 전국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르며 기대를 모으던 주정훈은 사춘기 시절 경기장 곳곳에서 들리는 수근거림에 상처를 받아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접었다.

태권도가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주정훈은 태권도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2017년 12월 장애인 선수로 변신한 그는 올해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아시아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면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주정훈은 첫 경기였던 16강전에서 마고메자기르 이살디비로프(30·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에게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을 거친 뒤 ‘리턴 매치’로 열린 3, 4위 결정전에서 이살디비로프를 물리치고 동메달을 목에 걸였다.

메달 확정 후 경기장에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던 주정훈은 “경기 시작 전부터 ‘아, 오늘 하루가 내 태권도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메달을 따고 났더니 부담감과 압박감을 털어냈다는 생각이 들어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 “2024년 파리 패럴림픽보다 먼저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메달이 동료들에게 더욱 절실함을 느끼게 해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장애가 있다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깰 수 있도록 더욱 많이 노력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주영대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탁구 남자 단식 TT1 금메달을 목에 건 주영대는 원래 체육 교사가 꿈이었다. 그러나 경상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이던 1994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마비가 찾아왔다.

주영대는 “처음 다치고 나서 4년 정도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러다 진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소식을 듣고 재활 목적으로 탁구를 시작했다”면서 “처음에는 ‘라켓을 잡지도 못하는 데 탁구를 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라켓과 손을 붕대를 묶고 시작하면서 ‘아, 나도 이거는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그냥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삼두박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진행하는 탁구 TT1 종목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주영대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없다. 주영대는 장애를 얻으면서 평범한 체육 교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세계 챔피언이 됐다.

‘신한불란(信汗不亂·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주영대는 “(장애인) 탁구에도 그랜드슬램이 있다. 패럴림픽,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아시아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면 그랜드슬램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직 세계선수권 금메달이 없다. 내년에 세계선수권이 있는데 꼭 금메달을 따서 그랜드슬램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탁구로 다시 세상과 만난 뒤 주영대는 경남장애인탁구협회 사무국장, 진주시장애인탁구협회 부회장 등을 겸임하기도 했다. 주영대는 “탁구 선수들 가운데 고령자가 많다. 탁구에도 젊은 선수들이 나와서 앞으로 명맥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면서 “나도 이제 나이가 많으니 노하우 등 전수해서 TT1, TT2 등급에서 한국이 계속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현욱(26·울산장애인체육회)은 탁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와 단식 결승에서 맞붙었다. 제가 긴장을 덜 해서 이겼을 뿐 김현욱이 실력이 부족해서 진 게 아니다”면서 “요즘에는 장애인 스포츠 기반이 잘 잡혀 있고 전문 코치들도 많아서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일단 밖으로 나오라”고 덧붙였다.